
삼성전자·SK하이닉스 자사주가 받아낸 4조9000억원…지수를 지키는 돈과 올리는 돈은 다르다
코스피에서 개인도 팔고 외국인도 팔고 기관도 팔았다. 그런데 이들이 내놓은 주식을 거의 그대로 받아낸 투자자가 있다. 이름도 익숙하지 않은 ‘기타법인’이다. 이달 들어 4일까지 기타법인이 코스피에서 사들인 주식은 4조8895억원. 그 돈의 상당 부분을 따라가 보면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의 자사주 매입이 나온다.
세 투자자가 팔았는데 4조9000억원을 누가 샀나
한국거래소에 따르면 9월 들어 4일까지 개인은 코스피에서 2조9150억원, 외국인은 1조8705억원, 기관은 813억원을 각각 순매도했다. 세 투자 주체가 모두 매도 우위를 보인 셈이다. 같은 기간 코스피는 약 1.95% 하락했다.
그런데 매수·매도는 결국 서로 맞아야 거래가 성립한다. 누군가 4조원이 넘는 주식을 팔았다면 반대편에는 그만큼을 사들인 사람이 있어야 한다.
그 역할을 한 것이 기타법인이다.
기타법인은 같은 기간 4조8895억원을 순매수했다. 개인과 외국인, 기관이 내놓은 물량 상당 부분을 혼자 받아낸 셈이다.
기타법인은 일반 투자자에게 익숙한 투자 주체는 아니다. 상장기업 등이 자기 회사 주식을 장내에서 직접 사들이는 경우에도 이 통계에 잡힌다. 최근 기타법인 순매수가 급증한 이유가 여기에 있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가 대규모 자사주 매입에 나섰기 때문이다.
55조원 자사주 매입…같아 보이지만 목적은 다르다
삼성전자는 지난 8월 21일 보통주 5328만5968주, 약 15조원 규모의 자사주를 장내에서 사들이기로 결정했다. 매입 기간은 8월 24일부터 11월 21일까지다. 다만 이번 매입 목적은 단순한 주주환원이나 소각이 아니다. 삼성전자가 공시한 목적은 2026년 경영성과에 따른 임직원 주식보상이다.

SK하이닉스는 성격이 다르다.
8월 19일 이사회를 열고 약 40조원 규모, 보통주 2407만주를 장내에서 매입한 뒤 전량 소각하기로 했다. 매입 기간은 8월 20일부터 11월 19일까지로, 주주가치 제고를 위한 직접적인 주주환원 정책이다.
목적은 다르지만 두 회사가 시장에서 사기로 한 자기 회사 주식을 돈으로 합치면 약 55조원이다.
그 규모가 워낙 크다 보니 코스피 전체 수급까지 바꾸고 있다.
9월 2일 기준 삼성전자는 예정 물량 가운데 약 29.7%, SK하이닉스는 약 27%를 이미 사들였다. 체결금액으로 삼성전자 약 4조782억원, SK하이닉스 약 10조9414억원이 집행됐다. 매입을 시작한 지 열흘도 지나지 않은 시점이었다.
방어막은 분명했지만 4% 하락까지 막지는 못했다
자사주 매입의 효과는 실제 시장에서도 확인됐다.
지난 1일 코스피는 중동 긴장 재고조로 하락하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의 자사주 매입이 유입되면서 상승 전환해 6835.80으로 장을 마쳤다. 거래대금은 전날보다 8조원 이상 줄어든 19조원 수준까지 떨어졌지만 지수 하단에서는 자사주 매입이 완충 역할을 했다.
그러나 다음 날 상황은 달랐다.
9월 2일 외국인과 기관의 매도가 거세지자 코스피는 하루 만에 3.99% 떨어져 6562.72로 내려앉았다. 기타법인이 이날도 대규모로 주식을 사들였지만 시장 전체에서 쏟아진 매도 물량까지 막아내지는 못했다.
이 장면은 자사주 매입의 역할을 비교적 분명하게 보여준다.
주가가 내려갈 때 받아주는 힘은 될 수 있지만 그것만으로 시장을 새로운 상승 구간으로 끌어올리기는 어렵다는 것이다.
4일에는 외국인과 기관이 각각 5034억원, 1조6690억원 순매수로 돌아서자 상황이 바로 달라졌다. 코스피는 1.64% 오른 6687.21로 마감했다. 이날도 기타법인은 1조5741억원을 순매수했지만, 지수를 실제로 끌어올린 것은 외국인과 기관의 복귀였다.
문제는 자사주 매입에도 끝나는 날이 있다는 것
더 눈여겨볼 부분은 앞으로다.
삼성전자가 공시한 자사주 취득 종료일은 11월 21일, SK하이닉스는 11월 19일이다. 그런데 지금과 같은 매입 속도가 이어진다면 공시된 종료일보다 훨씬 빠른 10월 중 물량이 소진될 가능성도 제기된다. 9월 2일까지의 매입 속도를 단순 적용하면 삼성전자는 10월 초, SK하이닉스는 10월 중순께 계획 물량을 채울 수 있다는 계산도 나온다.
55조원이라는 숫자는 크다.
하지만 무한정 들어오는 돈은 아니다.
지금은 외국인과 기관이 주식을 내놓더라도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라는 거대한 고정 매수자가 시장 아래에서 물량을 받아주고 있다. 이 매수 주문이 끝난 뒤에도 외국인 자금이 돌아오지 않는다면 지금까지 보이지 않았던 수급 공백이 그때부터 드러날 수 있다.
Next Insight 분석 | 지수를 지키는 돈과 지수를 올리는 돈은 다르다

자사주 매입을 악재로 볼 이유는 없다. 기업이 자기 회사의 주식을 사들이는 것은 시장에 실제 매수 수요를 만들고, 특히 SK하이닉스처럼 매입 후 소각까지 이어질 경우 기존 주주의 지분가치를 높이는 효과도 기대할 수 있다.
그러나 지금 코스피에서 나타나는 기타법인의 순매수를 새로운 투자자금 유입과 같은 의미로 해석해서도 안 된다.
외국인이 한국 기업의 미래가치를 보고 새로 들어오는 돈과 기업이 이미 정해 놓은 계획에 따라 자기 주식을 사는 돈은 출발점부터 다르다.
결국 코스피가 다시 7000선을 넘어 안착하려면 자사주라는 방어막보다 한국 주식을 사려는 투자자의 돈이 돌아와야 한다.
현재 시장에서 더 중요한 숫자는 기타법인이 앞으로 얼마를 더 살 것인가가 아니라,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가 자기 주식을 그만 사는 날 그 자리를 누가 대신할 것인가인지 모른다.
취재·작성: 김귤연 기자 | Next Insight News
nextinsight.news@gmail.com
참고자료
- 한국거래소 코스피 투자자별 매매동향
- 삼성전자 「주요사항보고서(자기주식취득결정)」, 2026.8.21
- SK하이닉스 자기주식 취득·소각 공시, 2026.8.19
- 연합뉴스, 2026.9.1·9.2·9.4 국내 증시 보도
- 이데일리, 「외인 던져도 받는 ‘기타법인 방어막’…10월 조기 소진 우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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