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4년5개월간 피해자 261명·성착취물 2천여개…유죄로 인정된 죄명만 25개
‘범죄단체조직·활동’은 무죄 확정…일부 가담자까지 협박받은 피해자였던 특수한 구조
텔레그램을 기반으로 장기간 성착취 범행을 벌인 ‘자경단’ 총책 김녹완에게 무기징역이 확정됐다. 피해자는 261명에 달했고 관련 불법 성착취물은 2천여개에 이른다. 그런데 판결에는 얼핏 모순처럼 보이는 대목이 하나 남았다. 수백명을 대상으로 장기간 범행이 이어졌지만 형법상 ‘범죄단체’를 조직하고 활동했다는 혐의는 인정되지 않았다. 이유는 범죄의 심각성이 낮아서가 아니라 일부 가담자까지 협박과 통제 아래 범행에 끌려 들어간 특수한 구조에 있었다.
261명·2천여개…4년5개월 이어진 범행
대법원 2부는 10일 아동·청소년성보호법 위반과 중대 성폭력 등 혐의로 기소된 김녹완에게 무기징역을 선고한 원심을 확정했다.
신상정보 공개·고지 10년, 아동·청소년·장애인 관련기관 취업제한 10년, 위치추적 전자장치 부착 30년도 그대로 유지됐다.
김녹완은 2020년부터 약 4년5개월 동안 텔레그램에서 자신을 ‘목사’라고 부르게 하고, 가담자들에게 ‘선임 전도사’, ‘전도사’ 등의 명칭을 부여한 것으로 조사됐다.
피해자의 개인정보나 성적 이미지를 확보한 뒤 이를 유포하겠다고 협박하고 추가 자료를 요구하거나 다른 사람을 포섭하도록 강요하는 방식이 반복됐다.
최종 확인된 피해자는 261명, 관련 불법 성착취물은 2천여개, 항소심에서 유죄로 인정된 죄명은 25개였다.
1·2심 무기징역…대법원도 유지
1심은 김녹완에게 무기징역을 선고했고 항소심도 같은 형을 유지했다.
재판부는 범행이 오랜 기간 지속됐고 피해 규모가 매우 컸으며, 일부 가담자가 수사기관에 적발된 뒤에도 새로운 피해자를 대상으로 범행을 이어간 점을 무겁게 봤다.
대법원 역시 범행 동기와 방법, 결과, 피해 정도 등을 종합했을 때 무기징역이 현저히 부당하다고 볼 수 없다며 상고를 기각했다.
그런데 ‘범죄단체’는 왜 아니었나
이 사건에서 가장 눈에 띄는 법적 판단은 따로 있다.
김녹완은 범죄단체조직·활동 혐의로도 기소됐지만 이 부분은 1심부터 무죄 판단을 받았고 최종적으로 확정됐다.
법원이 범행의 조직성이나 중대성을 부인한 것은 아니다.
형법상 범죄단체 또는 범죄집단으로 인정하려면 여러 사람이 공동의 범죄목적 아래 일정한 조직성과 계속성을 가진 결합체를 형성했다는 점이 입증돼야 한다.
그런데 자경단의 일부 가담자는 처음부터 범죄에 자발적으로 참여한 사람이 아니었다.
법원은 일부 가담자가 김녹완 등에게 성적 이미지 유포 협박을 받거나 심리적으로 통제된 뒤 다른 피해자를 연결하는 역할에 끌려 들어간 점을 중요하게 봤다.
즉 외형상 역할과 위계는 있었지만 구성원 모두가 처음부터 같은 범죄목적 아래 지속적으로 결합한 조직이라고 단정하기 어렵다는 판단이었다.
피해자가 다시 다른 피해자를 연결하는 구조
그렇다고 다른 피해자를 대상으로 한 범행에 가담한 책임까지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대법원은 ‘전도사’로 불린 일부 가담자가 자신 역시 협박 피해를 입었다는 점을 인정하면서도, 이후 다른 피해자를 대상으로 한 불법 성착취 범행에 참여한 책임은 별도로 인정했다.
이 사건의 특이성은 바로 여기에서 드러난다.
전형적인 범죄조직이 사람을 직접 모집해 역할을 나누는 방식이라면, 자경단에서는 먼저 한 사람을 협박과 통제 아래 두고, 그 사람을 통해 새로운 피해자가 연결되는 구조가 나타났다.
피해가 다음 피해를 만드는 연결고리가 된 셈이다.
박사방은 범죄집단 인정·42년…자경단은 무죄·무기징역

비교되는 사건은 텔레그램 ‘박사방’이다.
대법원은 2021년 박사방을 형법상 범죄집단으로 인정하고 총책 조주빈에게 징역 42년을 확정했다.
반면 자경단에서는 범죄단체 혐의가 인정되지 않았지만 총책에게는 무기징역이 확정됐다.
두 사건을 단순히 형량만 놓고 비교할 수는 없다. 적용된 혐의와 피해내용, 범행기간과 경합범 구조가 서로 다르기 때문이다.
다만 한 가지는 분명하다.
‘범죄단체’라는 법적 명칭이 성립하지 않아도 개별 성폭력·성착취 범행의 반복성과 피해 규모만으로 최고 수준의 형사책임이 인정될 수 있다는 점이다.
Next Insight 분석 | 더 무서운 것은 ‘조직’보다 피해자를 다음 범행의 도구로 만든 구조

자경단이 형법상 범죄단체로 인정되지 않았다는 사실은 범죄가 덜 조직적이었다는 뜻이 아니다.
오히려 그 이유 가운데 하나가 일부 가담자까지 김녹완의 협박과 통제에 놓였던 피해자였다는 점이었다.
전통적인 범죄조직은 조직원을 모집한다.
이 사건에서는 먼저 사람의 약점을 확보하고, 그 약점을 이용해 새로운 피해자를 연결하는 과정에 끌어들였다.
그래서 이번 판결에서 가장 중요한 숫자가 무기징역이나 261명만은 아닐 수 있다.
한 사람에게 가해진 피해가 어떻게 다음 사람을 향한 범행의 연결고리로 바뀌었는가.
텔레그램 채널 하나를 폐쇄하고 총책 한 명을 처벌하는 것으로 끝낼 수 없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플랫폼이 바뀌어도 협박→통제→포섭→새로운 피해라는 구조가 남아 있다면 같은 방식의 범죄는 다시 만들어질 수 있다.
이번 판결이 남긴 가장 무거운 질문은 자경단이 법적으로 범죄단체였느냐가 아니다.
피해자를 다음 범행의 도구로 바꾸는 구조를 어떻게 끊을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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