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21년 한국 국가대표 길 선택…독립운동가 허석 선생 5대손, 첫 아시안게임 개인전서 정상
파리올림픽 은메달 뒤 어깨 수술·재활 견뎌내고 복귀…“금메달 할머니 영전에 가져가겠다” 약속 지켜
허미미가 자신이 태어나고 자란 일본에서 태극기를 가장 높은 곳에 올렸다.
허미미는 1일 일본 나고야 아이치 인터내셔널 아레나에서 열린 2026 아이치·나고야 아시안게임 유도 여자 57㎏급 결승에서 몽골의 아리운자야 테르비시를 업어치기 유효승으로 꺾고 금메달을 차지했다.
아시안게임 개인전에 처음 출전한 허미미는 곧바로 정상에 올랐고, 한국 유도 대표팀에 이번 대회 첫 금메달을 안겼다.
일본에서 자랐지만 선택은 한국이었다
허미미는 2002년 일본 도쿄에서 한국인 아버지와 일본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났다.
일본에서 성장하며 유도를 배웠고, 중학생 시절부터 전국대회에서 두각을 나타냈다. 이후 와세다대 스포츠과학부에 진학하며 일본 유도계에서도 유망주로 평가받았다.
그러나 2021년 그의 선수 인생은 큰 방향 전환을 맞았다.
평소 각별했던 할머니가 세상을 떠나기 전 “한국 국가대표로 선수 생활을 했으면 좋겠다”는 뜻을 남겼고, 허미미는 일본 국적을 포기한 뒤 한국 선수의 길을 선택했다.
경북체육회 유도팀에 입단한 뒤에는 자신이 일제강점기 항일운동을 했던 독립운동가 허석 선생의 5대손이라는 사실도 알게 됐다.
12초 만에 잡은 유효…끝까지 지킨 리드
결승은 경기 초반부터 허미미가 흐름을 가져갔다.
허미미는 시작 12초 만에 업어치기를 시도해 유효를 얻었다. 이후 상대의 공격을 견제하면서 특기인 왼팔 업어치기를 반복해 기회를 만들었다.
경기 중반 이후에는 무리하게 추가 득점을 노리기보다 점수를 지키는 운영에 집중했다.
종료 1분여를 남기고 지도 1개를 받았지만 흐름을 잃지 않았다. 종료 직전까지 상대를 압박하며 경기를 마무리했고, 결국 초반에 따낸 유효가 그대로 금메달을 결정했다.
허미미는 경기가 끝난 뒤 눈물을 보였다.
파리 은메달 뒤 찾아온 수술과 긴 재활
이번 우승까지의 과정은 순탄하지 않았다.
허미미는 2024년 세계선수권 여자 57㎏급에서 정상에 오르며 한국 여자 유도의 간판으로 떠올랐다.
같은 해 파리올림픽에서는 결승까지 진출했지만 캐나다의 크리스타 데구치에게 패해 은메달을 목에 걸었다.
이후 어깨 부상으로 수술대에 올랐고 긴 재활이 이어졌다. 실전 감각을 회복하는 데도 적지 않은 시간이 필요했다.
허미미는 이번 대회를 앞두고도 수술 이후 컨디션이 완전히 돌아오지 않아 걱정이 컸다고 털어놨다. 경기 전날에는 잠을 제대로 자지 못할 정도로 부담도 컸다고 했다.
그럼에도 결과는 금메달이었다.
“할머니 말씀 없었다면 이 순간이 왔을까”

허미미에게 이번 금메달은 개인 기록 이상의 의미가 있었다.
그는 대회를 앞두고 금메달을 따면 할머니 묘비에 가져가겠다는 목표를 공개적으로 밝혔다.
실제로 금메달을 확정한 뒤에는 할머니의 유언을 떠올리며 감사의 마음을 전했다.
한국 국가대표가 되라는 할머니의 말씀이 없었다면 지금처럼 한국에서 선수 생활을 할 수 있었을지 생각하게 된다는 취지였다.
파리올림픽 당시 금메달을 따면 시상대에서 애국가를 따라 부르겠다며 가사를 외웠지만 은메달에 그쳤던 허미미는 이번 아시안게임을 앞두고 애국가도 다시 공부했다.
한국 국가대표를 선택한 지 5년 만에, 자신이 성장한 일본에서 금메달을 따며 그 약속을 현실로 만든 셈이다.
독립운동가 후손에서 한국 유도의 간판으로
허미미의 이력은 스포츠 성적만으로 설명되지 않는다.
일본에서 태어나 일본 유도 시스템 안에서 성장했고, 일본 국적을 포기한 뒤 한국 대표가 됐다.
한국행 이후에는 독립운동가 허석 선생의 후손이라는 사실까지 알려졌다.
그 사이 경기력도 세계 정상급으로 올라섰다.
세계선수권 금메달, 파리올림픽 은메달에 이어 아시안게임 금메달까지 추가하면서 허미미는 한국 여자 유도의 중심 선수로 확실히 자리 잡았다.
Next Insight 분석 | 국적을 바꾼 선택보다 더 중요한 것은 그 뒤의 시간

허미미의 이야기는 ‘일본 국적을 포기하고 한국을 택했다’는 한 문장만으로 소비하기 쉽다.
그러나 지금의 금메달을 만든 것은 그 선택 자체보다 이후의 시간이었다.
새로운 국가대표 시스템에 적응해야 했고, 세계 정상급 선수들과 경쟁해야 했다. 파리올림픽 은메달 뒤에는 수술과 재활이라는 또 다른 고비도 있었다.
허미미가 나고야에서 보여준 것은 특별한 가족사만이 아니다.
부상 이후 다시 몸을 만들고, 경기 감각을 되찾고, 첫 아시안게임 개인전에서 끝내 정상까지 올라간 선수의 과정이다.
할머니의 유언은 한국으로 향하게 한 출발점이었다.
하지만 그 유언을 금메달로 완성한 것은 결국 허미미 자신이었다.
작성·취재 | Next Insight News 김귤연 기자
이메일 | nextinsight.news@gmail.com
카카오톡 | Next Insight News 비즈니스 채널
홈페이지 | nextinsightnews.com
참고자료
- 2026 아이치·나고야 아시안게임 유도 여자 57㎏급 경기 결과
- 대한유도회 허미미 선수 경력 자료
- 경북체육회 허미미 선수 관련 자료
- 국가보훈부 독립운동가 허석 선생 공적 자료
- 2024 파리올림픽 유도 여자 57㎏급 경기 결과
- 허미미 아시안게임 금메달 및 경기 후 인터뷰 관련 보도
해시태그
#허미미 #아이치나고야아시안게임 #유도 #여자유도 #57kg급 #아시안게임금메달 #파리올림픽 #독립운동가후손 #허석 #경북체육회 #NextInsightNews
지금 많이 보는 기사
Next Insight 분석을 정리해 보내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