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27년 310호 시작, 2031년까지 약 9300호 만기…서울시 “계약 연장·분양전환 없이 재공급”
입주민 “20년 새 집값 급등”…계약의 원칙과 주거권 사이에서 시작된 첫 시험대
서울 장기전세주택이 도입 20년 만에 첫 만기를 앞두면서 공공임대의 오래된 질문이 다시 떠올랐다. 20년 동안 한 집에서 생활기반을 만든 기존 입주자의 주거 안정을 더 보호해야 하는지, 계약을 끝내고 기다리는 다른 무주택자에게 기회를 넘겨야 하는지의 문제다.
20년 뒤 처음 돌아오는 9300호
서울시는 2007년 전국 최초로 중대형 장기전세주택을 도입했다. 무주택자가 시세보다 낮은 보증금으로 장기간 거주하면서 저축과 청약을 통해 다음 주거단계를 준비하도록 만든 제도다.
현재까지 3만8296호가 공급돼 누적 4만5715가구가 이용했다. 올해 평균 보증금은 2억9300만원으로 서울 아파트 평균 전세가격 7억1178만원의 약 41% 수준이다.
문제는 내년부터다. 2027년 310호를 시작으로 2031년까지 약 9300호가 최장 거주기간 20년에 도달한다. 서울시는 이 주택을 반환받아 장기전세와 청년·신혼부부 대상 ‘미리내집’ 등으로 다시 공급할 계획이다. 계약 연장이나 기존 입주자 대상 분양전환은 허용하지 않는다는 방침이다.
법에는 ‘임대의무’, 계약에는 ‘최장 20년’

일부 입주민은 법령에서 규정하는 20년이 임차인의 최대 거주기간이 아니라 공공주택사업자의 ‘임대의무기간’이라는 점을 들어 계속 거주할 수 있도록 제도를 바꿔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사업자의 임대의무기간과 한 임차인의 계속 거주권은 같은 개념이 아니다.
현재 서울시 관련 시행규칙은 최초 임대기간을 2년으로 하고 입주자격을 유지하면 2년마다 계약을 갱신해 최장 20년까지 거주할 수 있도록 규정하고 있다. 서울시 역시 2007년 최초 모집공고와 임대차계약 단계부터 ‘최장 20년 거주’와 ‘분양전환 불가’를 명시해 왔다는 입장이다.
따라서 현재 쟁점은 기존 입주자에게 법적으로 당연한 영구거주권이 있느냐보다 20년이라는 기존 계약 원칙을 정책적으로 다시 바꿀 이유가 있느냐에 더 가깝다.
20년 사이 너무 멀어진 집값
입주민의 요구에도 현실적인 배경은 있다.
20년은 짧은 시간이 아니다. 입주 당시 중년이던 사람은 고령자가 됐고, 자녀의 학교와 직장, 병원과 이웃까지 생활권이 한 지역에 굳어진 경우도 있다. 무엇보다 그 사이 서울 집값과 전셋값이 크게 올라 반환받은 보증금만으로 비슷한 지역과 면적의 주택을 구하기 어려워졌다는 것이 입주민 측 주장이다.
그렇다고 주택가격 상승이 기존 계약을 사실상 무기한 연장해야 할 권리로 곧바로 연결되는지는 별개의 문제다.
오세훈 서울시장은 8일 “더 살고 싶다는 분들이 있어 시끌시끌하다”며 일부 연장 요구를 “비양심적인 억지”라고 강하게 비판했다. 이어 만기 퇴거에는 예외를 두지 않겠다고 밝혔다.
표현의 적절성과 별개로 서울시가 내세우는 논리는 분명하다. 한 가구의 20년 다음에는 다른 무주택자의 20년이 시작돼야 한다는 것이다.
먼저 나간 사람들과 기다리는 사람들
서울시 자료에 따르면 제도 도입 이후 20년을 채우기 전에 퇴거한 가구는 1만5529가구다. 이 가운데 82.4%는 자가 구입이나 민간 전세 이동 등을 위한 자발적 퇴거였다.
2016~2021년 장기전세 퇴거자 1708가구를 조사한 SH 패널조사에서는 72%가 퇴거 후 자가에 거주한 것으로 나타났다. 서울시는 이를 장기전세가 영구거주형 복지보다 주거비를 줄여 다음 단계로 이동하도록 돕는 ‘주거사다리’로 기능했다는 근거로 제시한다.
여기에 형평성 문제가 더해진다. 같은 ‘최장 20년’ 조건을 받아들이고 먼저 집을 샀거나 다른 곳으로 옮긴 가구가 있는 상황에서 만기를 맞은 가구만 계약을 연장하면 먼저 나간 사람과 앞으로 입주를 기다리는 사람 모두에게 새로운 불공정이 생길 수 있다.
Next Insight 분석 | 공공임대 ‘집’인 동시에 ‘기회’

이번 논쟁을 기존 입주자의 욕심과 서울시의 원칙 대결로만 보면 핵심을 놓치게 된다.
장기전세는 분명 20년 동안 한 가족의 집이었다. 그러나 동시에 세금과 공공의 제도로 확보한 한정된 주거 기회이기도 하다. 기존 입주자의 거주기간을 사실상 무기한 연장하면 그 주택을 기다리는 또 다른 무주택자의 기회는 그만큼 뒤로 밀린다.
서울시가 한국리서치에 의뢰한 시민 1000명 조사에서도 20년 만기 퇴거에 73.9%가 찬성했고, 장기전세 공급 확대에는 78.3%가 동의했다. 조사 주체와 정책적 이해관계를 감안해 볼 필요는 있지만, 시민들이 공공임대를 ‘순환해야 할 자원’으로 보는 인식도 적지 않다는 의미다.
그렇다고 20년을 채운 고령·저소득 가구까지 아무런 장치 없이 시장으로 밀어내는 것이 공공주택의 목적일 수도 없다. 서울시는 소득·자산 기준을 충족하는 만기 가구에 영구임대·국민임대 등 다른 공공임대를 연계하고 이주상담과 금융지원 정보를 제공한다는 계획이다.
결국 해법은 ‘계약을 무기한 연장할 것인가’와 ‘퇴거 이후의 주거를 어떻게 보호할 것인가’를 분리하는 데 있을 가능성이 크다.
20년 계약은 끝낼 수 있다. 그러나 공공의 책임까지 그날 끝날 필요는 없다.
장기전세 첫 만기가 묻는 것은 그래서 단순히 “20년 살았으면 나가야 하나”가 아니다.
한정된 공공주택이라는 기회를 한 사람에게 얼마나 오래 보장하고, 언제 다음 사람에게 넘겨줄 것인가.
2027년 처음 돌아오는 310호는 그 원칙을 시험하는 첫 사례가 된다.
취재·작성: 김귤연 기자 | Next Insight News
nextinsight.news@gmail.com
참고자료
서울특별시, 「오세훈 시장, 장기전세주택 입주민과 ‘희망토크’…내 집 마련 잇는 ‘주거사다리’ 성과 공유」, 2026.09.08
서울특별시, 장기전세주택 20년 만기 관련 팩트브리핑
국가법령정보센터, 「서울특별시 공공주택 건설 및 공급 등에 관한 조례 시행규칙」
연합뉴스, 「오세훈 ‘장기전세 20년 만기 연장 요구는 비양심적 억지’」, 2026.09.08
연합뉴스, 「장기전세 20년 채운 입주민들 ‘더 살게 해달라’…서울시 ‘불가’」, 2026.08.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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