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72조 맡긴 국민연금의 새 질문…‘얼마 벌었나’에서 ‘어떻게 벌었나’

금융자산 절반 넘는 972조원 외부 운용…국내주식 운용사 수탁자책임도 ‘본배점’ 평가
10년 만에 스튜어드십 코드 개정…수익률 넘어 의결권·이해상충·기업가치 제고 과정까지 성적표

국민연금이 외부 운용사를 바라보는 기준에 변화가 시작됐다. 수익률이라는 결과만이 아니라 기업을 어떻게 감시하고 의결권을 행사했는지, 이해상충을 어떻게 관리하며 장기적인 주주가치를 높였는지까지 평가해 돈의 배정과 연결하는 것이다. 다만 현재 이 변화의 직접 대상은 972조원 전체가 아니라 국내주식 위탁운용사다.

1,865조원 국민연금…절반 넘는 972조원을 외부에 맡긴다

국민연금기금운용본부에 따르면 2026년 6월 말 국민연금 전체 자산은 1,865조6000억원, 이 가운데 금융부문은 1,864조8000억원이다. 직접운용은 895조3000억원(47.9%), 국내외 외부 운용사에 맡긴 위탁운용은 972조4000억원(52.1%)으로 금융자산의 절반을 넘어섰다.

위탁운용 자산은 주식 613조3000억원, 채권 101조7000억원, 대체투자 257조4000억원으로 구성된다. 국민연금의 운용사 선정 기준이 시장에 미치는 영향이 큰 이유다.

다만 972조4000억원 전체에 이번 수탁자책임 평가가 즉시 적용되는 것은 아니다. 7월 2일 국민연금 기금운용위원회가 질적 평가 강화를 결정한 직접적인 대상은 국내주식 위탁운용사다.

수익률 옆에 새로 들어오는 ‘수탁자책임 성적표’

국민연금 기금운용위원회는 지난 7월 2일 국내주식 위탁운용사의 수탁자책임 활동을 질적으로 평가하고 향후 추가 자금 배정이나 회수에 평가 결과를 연계하기로 의결했다.

평가 대상에는 국민연금의 수탁자책임 원칙을 제대로 준수했는지, 이해충돌 상황에 적절하게 대처했는지 등 주주가치 제고 노력의 질적 수준이 포함된다. 국민연금 자체도 7개 원칙에 따른 12개 항목의 수탁자책임 활동 이행보고서를 작성해 전문위원회의 점검을 받은 뒤 공개한다.

핵심은 ‘반대표를 얼마나 많이 던졌느냐’가 아니다. 기업 경영진에 찬성했든 반대했든 어떤 근거와 절차로 판단했고, 이해상충 없이 장기적인 투자자 이익을 고려했는가가 중요해진다.

운용사 입장에서는 수익률만으로 경쟁하던 평가표에 기업 모니터링, 의결권 행사, 이해상충 관리와 같은 새로운 항목이 본격적으로 들어오는 셈이다.

10년 만에 바뀐 스튜어드십 코드…‘가입’에서 ‘이행’

이 변화는 한국 스튜어드십 코드 개편과 맞물려 있다.

한국 스튜어드십 코드는 기관투자자가 고객과 수익자의 장기적인 이익을 위해 투자기업을 점검하고 필요한 주주활동을 수행하도록 만든 민간 자율규범으로 2016년 12월 도입됐다. 금융위원회에 따르면 2025년 말 참여기관은 249곳까지 늘었다. 그러나 가입기관 숫자에 비해 실제 이행 수준을 비교·평가하기 어렵다는 문제가 지속됐다.

스튜어드십 코드 발전위원회는 올해 7월 24일 제정 10년 만의 첫 개정안을 확정했고, 준비기간을 거쳐 2027년부터 본격 시행한다.

결국 제도의 중심도 “스튜어드십 코드에 참여했는가”에서 “실제로 무엇을 했는가”로 이동하고 있다.

‘책임투자’가 수익률보다 앞서는 것은 아니다

여기에는 분명한 경계도 필요하다.

국민연금의 돈은 국민의 노후자금이다. 수탁자책임 활동 자체가 목적이 될 수 없으며, 기업에 적극적으로 관여하는 행위가 자동으로 투자수익률을 높인다고 단정할 수도 없다.

평가제도가 형식적인 반대표나 보여주기식 기업관여를 유도한다면 오히려 비용만 늘어날 수 있다. 정치·사회적 판단이 투자전문성을 압도하는 상황 역시 경계해야 한다.

따라서 이번 제도의 성패는 ‘적극적으로 행동했느냐’보다 그 행동이 장기적인 투자위험을 낮추고 기업가치와 기금수익에 실제로 도움이 됐는지를 얼마나 객관적으로 평가할 수 있느냐에 달려 있다.

Next Insight 분석 | 좋은 운용사의 기준, ‘수익률’이 아닌 ‘수익의 질’

972조원을 외부에 맡기고 있는 국민연금에게 운용사의 수익률은 앞으로도 가장 중요한 성적표 중 하나다. 달라지는 것은 그것만으로 충분하지 않을 수 있다는 점이다.

10%를 벌어온 두 운용사가 있다면 이제 다음 질문이 따라붙는다.

그 10%를 어떤 위험을 감수해 만들었고, 투자기업의 문제를 어떻게 점검했으며, 이해상충 상황에서 누구의 이익을 위해 판단했는가.

수익률이 ‘얼마 벌었나’를 보여준다면 수탁자책임은 ‘어떻게 벌었나’를 설명하는 기록이다.

국민연금이 이 기록을 실제 자금 배정과 회수에 연결하면 국내 자산운용사에도 변화가 불가피하다. 좋은 운용사를 가르는 기준이 단기 수익률 경쟁에서 장기적인 기업가치와 위험관리까지 포함하는 ‘수익의 질’로 넓어질 수 있기 때문이다.

다만 그 변화가 국민의 노후자금에 도움이 됐는지는 결국 또 하나의 숫자로 검증돼야 한다. 장기수익률이다. 책임투자가 좋은 의도에 머물지 않고 국민연금의 장기 성과로 연결될 때 비로소 이번 제도 변화의 의미도 완성된다.


취재·작성: 김귤연 기자 | Next Insight News
nextinsight.news@gmail.com

참고자료

국민연금기금운용본부, 「포트폴리오 현황·위탁운용 규모」, 2026년 6월 말 기준
보건복지부, 「제6차 국민연금기금운용위원회 개최」, 2026.7.2
한국ESG기준원, 「한국 스튜어드십 코드 개정 발표」, 2026.7.27
금융위원회, 「스튜어드십 코드 내실화 방안 추진」, 2025.12.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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