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떡지순례 8부작 ⑤] 백설기에서 피자설기까지…전통 떡은 어떻게 ‘디저트’가 됐나

피자·과일·요거트가 떡 안으로 들어오고 백화점·대형마트 매출까지 움직였다…그러나 퓨전의 본질은 낯선 재료의 결합보다 ‘명절 음식’을 오늘 바로 사 먹는 개인 디저트로 바꾼 소비방식의 재설계에 있다

백설기 위에 치즈와 페퍼로니를 얹고, 찹쌀떡에는 생과일·요거트·크림을 넣는다. 이름만 놓고 보면 전통과 거리가 멀어 보이지만 소비자는 이를 ‘떡이 아닌 것’으로 밀어내지 않고 새 디저트로 받아들이기 시작했다. 부산 영도의 피자설기는 새벽 줄과 구매 제한까지 만들며 다른 지역으로 확산됐고, 과일·요거트를 결합한 찹쌀떡 브랜드 앞에도 수십 명의 대기행렬이 생겼다.
주목할 변화는 치즈나 과일 자체가 아니다. 명절·경조사에 여러 개를 주문하던 떡이 한 개씩 골라 먹고, 사진을 찍고, 데워 먹으며 다시 사는 일상형 상품으로 바뀌고 있다는 점이다. 퓨전 떡의 성패도 결국 얼마나 새롭게 섞느냐보다 떡의 정체성을 남긴 채 소비 장면을 얼마나 넓히느냐에서 갈릴 가능성이 크다.


백설기에 피자 한 조각…‘피자설기’가 보여준 변화의 본질

최근 떡지순례의 한 축으로 부상한 피자설기는 백설기 위에 치즈·페퍼로니·감자 등을 올린 제품으로, 발원지 가운데 하나로 거론되는 부산 영도에서는 개당 1,400~1,500원 수준에 판매되며 새벽 대기와 1인 10개 구매 제한까지 나타났고 이후 대구·광주·인천·창원 등으로 비슷한 제품이 확산됐다.

흥미로운 점은 특정 대형 브랜드가 전국시장을 장악한 것이 아니라 하나의 조리 아이디어가 동네 떡집을 따라 복제·변형되며 확산됐다는 사실이다. 이는 퓨전 떡의 진입장벽이 비교적 낮다는 장점과 동시에, 차별화 없이 유행만 따라갈 경우 제품이 빠르게 평준화될 수 있다는 위험을 함께 보여준다.

피자설기가 의미 있는 이유도 ‘떡에 피자를 올렸다’는 기발함보다 백설기를 간식이나 식사로 바로 이해할 수 있는 언어로 번역했다는 데 있다. 소비자는 더 이상 백설기의 전통적 쓰임을 알아야 구매할 필요가 없고, 피자라는 익숙한 맛을 통해 떡의 식감부터 경험한다.


과일·요거트까지 들어왔다…떡의 경쟁 상대가 바뀌었다

퓨전의 방향은 짭짤한 식사형 제품에만 머물지 않는다. 백화점에 입점한 한정선은 찹쌀떡에 생과일을 넣은 ‘과일 모찌’에 이어 요거트와 생과일을 결합한 제품을 선보였고, 현대백화점 무역센터점에서는 한때 약 50명이 구매 순서를 기다렸다.

이 변화가 중요한 이유는 떡이 더 이상 떡집 안에서만 경쟁하지 않기 때문이다. 과일·크림·요거트를 품은 찹쌀떡은 케이크와 마카롱, 쿠키, 베이커리 제품이 차지하던 백화점 디저트 진열대와 오후 간식 시간을 직접 겨냥한다.

롯데백화점 본점의 베이커리·디저트 매출은 올해 7월 전년 동기보다 50%, 8월 1~18일에는 60% 증가했고, 신세계 스위트파크는 7월 1일부터 8월 17일까지 31.1%, 현대백화점 전체 F&B 매출도 같은 기간 28.6% 늘었다. 이 수치 전체를 떡의 영향으로 돌릴 수는 없지만, 떡 브랜드가 주요 디저트 매장 안에서 소비자의 선택지를 차지하고 있다는 사실은 분명하다.

떡의 경쟁시장이 ‘전통식품’에서 ‘디저트 전체’로 넓어진 것이다.


시장이 커진 이유는 제품 수보다 ‘먹는 순간’이 늘었기 때문이다

동아일보가 썸트렌드 데이터를 분석한 결과 떡을 ‘디저트’로 언급한 게시물은 1년 사이 40% 이상 증가했고, ‘한 끼’와 함께 언급된 비중도 전년보다 54.6% 늘었다. 반면 ‘주문’이나 ‘답례떡’처럼 기존 의례형 소비와 관련한 언급은 감소했다.

이 숫자들은 퓨전 떡 시장을 읽는 데 결정적이다. 성장의 핵심은 새로운 맛 몇 가지가 추가된 것이 아니라 떡을 먹을 수 있는 시간이 명절·잔치에서 아침, 점심 대용, 오후 간식, 카페 디저트까지 확장됐다는 데 있기 때문이다.

과거 한 번에 수십 개를 주문하던 수요는 줄 수 있지만 한 사람이 일주일에 여러 번 한두 개씩 구매하는 시장이 커진다면 산업구조는 전혀 달라진다. 포장 단위가 작아지고, 냉장·냉동 유통과 개별 판매가 중요해지며, 제품 개발도 의례보다 반복구매를 중심으로 바뀔 수밖에 없다.

따라서 퓨전 떡은 단순한 메뉴 혁신이 아니라 떡의 소비주기를 다시 설계하는 상품 전략으로 봐야 한다.


냉동 떡 매출 171% 증가…‘보관의 약점’도 빠르게 사라지는 중

떡의 일상화를 가로막았던 가장 큰 약점 가운데 하나는 보관이었다. 갓 만들었을 때는 좋지만 시간이 지나면 굳고, 소비자는 필요할 때마다 떡집을 방문해야 했다.

냉동·해동 기술과 전자레인지 조리가 보편화되면서 이 제약도 약해지고 있다. 이마트의 냉동 떡 매출은 올해 7월 전년 동기보다 127.7%, 8월 1~18일에는 171.2% 증가했고 롯데마트의 같은 기간 떡 매출도 17.1% 늘었다.

최근 피자설기 관련 블로그 연관어에서 ‘전자레인지’가 페퍼로니·백설기와 비슷한 수준으로 등장한 것도 같은 흐름이다. 소비자가 매장에서만 완성되는 제품이 아니라 집에 가져가 다시 데워도 비슷한 경험을 재현할 수 있는 음식으로 받아들이기 시작한 것이다.

이는 작은 변화가 아니다. 식품시장에서 반복구매를 만드는 것은 맛뿐 아니라 얼마나 쉽게 보관하고 원하는 순간에 먹을 수 있느냐이기 때문이다.


퓨전의 위험…치즈·크림을 넣는다고 모두 ‘요즘 떡’이 되는 것은 아니다

시장이 빠르게 성장할수록 모방도 빨라진다. 피자설기가 여러 지역으로 확산되고 크림·과일·초콜릿을 넣은 제품이 늘어나면 처음에는 선택지가 많아지지만, 어느 순간 비슷한 조합이 넘치면서 차별성이 사라질 수 있다.

여기서 전통 떡이 서양식 디저트를 그대로 따라가는 전략에는 한계가 생긴다. 크림의 품질로 경쟁하면 전문 케이크 브랜드와 맞서야 하고, 치즈와 토핑이 중심이 되면 백설기의 존재 이유가 약해질 수 있으며, 유행 재료가 사라지는 순간 제품 전체가 함께 낡아질 위험도 있다.

따라서 좋은 퓨전의 기준은 재료의 새로움보다 새로운 재료가 떡 고유의 식감과 쌀의 풍미를 더 분명하게 만드는가, 아니면 그것을 가려버리는가에 있어야 한다.

퓨전은 전통을 없애는 기술이 아니라 전통의 진입장벽을 낮추는 번역이어야 한다.


전통 떡도 함께 뜬다…‘변해야만 산다’는 공식은 틀렸다

최근 시장에는 퓨전 떡과 반대되는 현상도 동시에 나타난다. 공주 산성시장의 부자떡집은 별도의 신제품 출시 없이도 블로그 언급량이 853건에서 5,463건으로 540% 증가했고, 연관어에는 ‘여행’·‘공주여행’·‘코스’·‘주차장’처럼 방문 동선을 뜻하는 표현이 두드러졌다.

이는 중요한 반례다.

젊은 소비자가 새로운 재료를 넣은 떡만 찾는다면 전통 제품만 판매하는 오래된 가게의 관심이 이렇게 증가하기 어렵다. 결국 시장이 원하는 것은 무조건적인 변화가 아니라 이 집에서만 얻을 수 있는 이유이며, 어떤 가게는 피자설기로 그것을 만들고 다른 가게는 수십 년간 지켜온 전통 제품으로 같은 효과를 낸다.

따라서 생존공식은 ‘전통이냐 퓨전이냐’가 아니다.

대체 가능한 떡인가, 찾아갈 이유가 있는 떡인가의 문제에 더 가깝다.


NextInsight | 퓨전의 핵심은 ‘무엇을 넣었나’보다 ‘언제 먹게 만들었나’

피자설기와 과일찹쌀떡을 보면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오는 것은 치즈·페퍼로니·생과일·요거트다.

그러나 산업적으로 더 큰 변화는 재료가 아니다.

소비 순간의 확장이다.

백설기는 더 이상 잔칫날에만 먹는 떡이 아니고, 찹쌀떡도 팥앙금 하나로 정의되지 않는다. 아침에는 한 끼가 되고 오후에는 디저트가 되며, 백화점에서는 케이크와 경쟁하고 냉동실에서는 언제든 꺼내 먹을 수 있는 간편식이 된다.

국내 떡류 판매액이 2018년 5,641억원에서 2024년 9,291억원으로 약 65% 증가한 배경도 이런 소비 장면의 확대와 떼어놓고 보기 어렵다.

그렇다고 모든 떡집이 피자와 크림을 넣어야 하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시장이 커질수록 중요한 것은 유행 재료보다 자기 제품의 중심을 무엇으로 남길 것인가다.

피자설기의 경쟁력이 치즈만이라면 다른 곳에서 쉽게 복제된다. 과일찹쌀떡의 경쟁력이 과일만이라면 과일 디저트와 차이가 없다. 그러나 쌀의 질감과 제조법, 지역의 기억, 특정 가게의 기술이 새로운 재료와 결합하면 제품은 단순한 유행을 넘어 브랜드가 될 수 있다.

결국 떡의 현대화는 전통을 버리는 과정이 아니다.

전통의 핵심은 남기고 소비의 문법을 바꾸는 과정이다.

그리고 이 변화가 중요한 이유는 다음 단계에 있다. 제품이 현대화돼 시장이 커져도 정작 오래된 동네 떡집 상당수는 어려움을 겪고 있기 때문이다.

6편에서는 **「떡 시장은 커졌는데 떡집은 줄었다…15% 폐업의 역설」**을 통해 시장 규모 확대가 왜 개별 떡집의 생존으로 이어지지 않는지, 생산인력·승계·원가·유통·브랜드 집중이라는 산업 내부의 구조적 문제를 분석한다.


참고자료

  • 동아일보, 「“빵지순례 다음은 떡지순례”…오픈런·웨이팅 부른 떡 디저트 열풍」, 2026.8.29.
  • 헤럴드경제, 「쫀득쫀득 입에 착착…‘두쫀쿠’ 잇는 디저트가 떡이라고?」, 2026.8.20.
  • 머니투데이, 「빵지순례 다음은 떡? 창억떡 웨이팅만 500번, 배달되는데 굳이 왜…」, 2026.8.30.
  • 부산지역 피자설기 오픈런·로컬 떡집 관련 현장 보도, 2026.5.

취재·작성: 김귤연 기자 | Next Insight News
nextinsight.news@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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