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이 사라지고 관계가 끊어지는 시대…이창동이 24년 만에 다시 받은 은사자상

가능한 사랑’ 베니스 심사위원대상…‘오아시스’ 감독상 이후 24년 만의 경쟁부문 본상
해고노동자와 두 부부의 삶 통해 노동·계급·관계 질문…8년 만의 신작, 아카데미 한국 대표작까지

이창동 감독이 24년 만에 다시 베니스의 은사자를 품었다.

영화 **<가능한 사랑>**은 12일 폐막한 제83회 베니스국제영화제 경쟁부문에서 은사자상-심사위원대상(Silver Lion–Grand Jury Prize)을 받았다. 황금사자상 다음에 놓이는 주요 경쟁부문 본상이다. 올해 황금사자상은 메이 엘투키 감독의 <우먼 언노운(Woman Unknown)>에 돌아갔다.

이창동 감독이 베니스 경쟁부문 본상을 받은 것은 2002년 <오아시스>로 감독상을 받은 이후 24년 만이다. 당시 문소리는 같은 작품으로 신인 배우에게 주어지는 마르첼로 마스트로얀니상을 받았다. 베니스 공식 기록에도 두 수상이 함께 남아 있다.

그러나 이번 수상이 눈에 띄는 이유는 ‘24년 만의 귀환’이라는 숫자만은 아니다.

<가능한 사랑>이 바라보는 곳은 지금의 노동과 관계다.

해고노동자와 다큐멘터리 감독, 두 부부의 교차

<가능한 사랑>은 해고노동자와 그의 아내, 다큐멘터리 감독과 그 남편이라는 두 부부가 촬영을 계기로 만나 서로 다른 삶과 감춰진 욕망을 마주하는 이야기다.

전도연·설경구·조인성·조여정이 주연을 맡았고, 러닝타임은 164분이다. 이창동 감독과 오정미 작가가 각본을 썼으며 김지용 촬영감독, 정재일 음악감독이 참여했다. <버닝> 이후 8년 만에 내놓은 이 감독의 장편 신작이기도 하다.

출발점에는 노동의 기억이 있다.

이 감독은 제작 과정에서 2009년 대규모 정리해고와 장기간 이어진 노동자들의 고통을 다시 바라봤다고 설명했다. 단순히 과거의 노동분쟁을 재현하는 대신, 그 사건을 다큐멘터리로 기록하려는 인물을 영화 안으로 끌어들이면서 현재의 관계와 계급 문제로 넓혔다.

그래서 제목은 ‘가능한 사랑’이지만 영화가 묻는 사랑은 낭만적인 감정에 머물지 않는다.

삶을 지탱하던 노동이 사라지고, 서로 다른 계층과 세계가 점점 단절될 때 사람과 사람 사이에는 무엇이 남을 수 있는가.

‘오아시스’에서 ‘가능한 사랑’까지, 달라진 것은 시대

2002년 <오아시스> 역시 사회의 가장자리로 밀려난 두 사람을 바라봤다.

24년이 지난 <가능한 사랑>에서도 이창동의 시선은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다만 주변부를 만드는 방식이 달라졌다. 이번에는 개인의 장애나 배제보다 해고, 노동의 소멸, 경제적 격차와 관계의 단절이 전면에 놓였다.

이 감독은 지난달 제작발표회에서 작품을 두고 “어떤 사랑이 가능한지, 사랑을 가능하게 하려면 우리가 어떻게 해야 하는지”를 묻는 영화라고 설명했다. 집단해고와 노동 소멸의 시대일수록 결국 삶을 지탱하는 것이 무엇인지 묻겠다는 것이다.

24년 전 베니스가 <오아시스>에서 보았던 인간의 존엄이, 이번에는 노동과 계급이 갈라놓은 두 부부의 관계로 옮겨온 셈이다.

베니스 다음은 아카데미

<가능한 사랑>의 국제 여정은 베니스에서 끝나지 않는다.

영화진흥위원회는 이미 이 작품을 제99회 아카데미영화상 국제장편영화 부문 한국 출품작으로 선정했다. 선정위원회는 작품의 완성도와 메시지, 인물의 복합성을 끌어내는 연출력 등을 높게 평가했다. 다만 한국 출품작 선정은 아카데미 후보 지명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앞으로 예비후보와 최종 후보 선정 절차가 남아 있다.

국내 극장에서는 9월 23일 개봉하고, 이후 미국·캐나다·영국·일본 등에서도 극장 공개한 뒤 11월 6일 넷플릭스를 통해 전 세계에 공개될 예정이다.

세계 영화제의 작가주의와 글로벌 스트리밍 플랫폼이 한 작품 안에서 만나는 구조도 이례적이다.

Next Insight 분석 | 24년 만의 은사자보다 더 오래 남을 질문

베니스의 은사자는 이창동 감독의 경력에 하나의 기록을 더했다.

그러나 <가능한 사랑>의 가치가 상의 높이에서만 결정되는 것은 아니다.

이 영화가 바라보는 것은 이미 우리 주변에서 진행되고 있는 변화다. 공장은 사람 대신 기계를 선택하고, 기업은 효율을 이유로 일자리를 줄이며, 사람들은 같은 도시 안에서도 전혀 다른 경제적 세계를 살아간다. 노동이 사라진 자리에는 소득의 문제가 남지만, 그것만 남는 것은 아니다. 직업을 통해 유지되던 자존감과 관계, 공동체까지 함께 흔들린다.

이창동은 그 틈에 ‘사랑’이라는 단어를 놓았다.

그것은 해고노동자의 삶을 따뜻하게 위로하자는 단순한 메시지가 아니다. 서로의 삶을 이해할 기회마저 줄어드는 사회에서 다른 세계에 사는 사람끼리 관계를 맺는 것이 아직 가능한가라는 질문에 가깝다.

24년 전 <오아시스>가 사회 밖으로 밀려난 두 사람을 통해 우리가 누구를 정상이라고 부르는지 물었다면, <가능한 사랑>은 노동과 계급으로 갈라진 사람들 사이에 무엇이 남아 있는지를 묻는다.

그래서 이번 은사자상에서 더 눈여겨볼 것은 ‘24년 만의 수상’이라는 기록보다 그 사이 달라진 세상일지 모른다.

노동은 줄어들고 관계는 멀어졌다. 그런데도 사랑은 가능한가.

이창동이 8년 만에 돌아와 베니스에서 다시 꺼낸 질문이다.


작성·취재 | Next Insight News 김귤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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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자료
베니스국제영화제 공식 수상 결과 및 작품 소개, 베니스 공식 아카이브, 영화진흥위원회, 넷플릭스, 로이터,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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