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일 오전 6시41분 별세…심정지 후 하루 동안 사투, 한국 야구계 ‘큰 별’ 떠나

1982년 250타수 103안타 타율 0.412…44년이 지나도 누구도 넘지 못한 KBO 유일의 4할
일본에서도 타격왕·LG 창단 첫해 한국시리즈 우승 지휘…KBO, 역대 두 번째 ‘KBO장’으로 마지막 길 예우
한국 프로야구 역사에 ‘4할 타자’라는 단 하나의 기록을 남긴 백인천 전 감독이 세상을 떠났다.
한국야구위원회(KBO)와 야구계에 따르면 백 전 감독은 2026년 8월 15일 오전 6시41분 충남 천안 단국대학교병원에서 별세했다. 국내 야구계는 향년 83세로 전했다.
백 전 감독은 전날인 14일 오전 심정지 상태로 병원에 이송됐다. 심폐소생술 이후 혈압과 맥박이 돌아오면서 한때 회복 가능성이 기대됐지만 뇌출혈 등으로 위중한 상태가 이어졌고, 약 하루 동안 생사의 고비를 넘나든 끝에 15일 아침 눈을 감았다. 고인은 과거에도 여러 차례 뇌경색으로 쓰러져 오랜 기간 재활과 투병을 이어왔다.
그의 이름 앞에 평생 따라다닌 표현은 ‘한국 프로야구 유일의 4할 타자’였다.
그러나 백인천이라는 야구인이 한국 야구사에 남긴 족적은 0.412라는 숫자 하나로만 설명하기 어렵다.
그는 한국 프로야구가 만들어지기 전 일본프로야구에서 19년 동안 선수 생활을 했고, 일본에서 타격왕을 차지한 뒤 국내 프로야구 원년에 선수 겸 감독으로 돌아왔다. 이후 LG 트윈스의 창단 첫 한국시리즈 우승을 이끌었고, 지도자로서는 이승엽을 비롯한 후배 타자들에게 영향을 남겼다. 일본과 한국 프로야구의 초창기를 직접 연결한 몇 안 되는 야구인이기도 했다.
14일 ‘별세’ 보도 혼선…실제 별세 시점은 15일 오전 6시41분
백 전 감독의 마지막 하루에는 한 차례 큰 혼선도 있었다.
14일 오전 백 전 감독이 심정지 상태로 발견되자 일부 언론에서는 그가 별세했다고 긴급 보도했다. 그러나 이후 미세하게 맥박과 호흡이 돌아온 사실이 확인되면서 관련 기사가 수정됐다. 당시 백 전 감독은 산소호흡기를 착용한 채 치료를 계속했고 한때 정상 수준의 혈압을 회복하기도 했다.
결국 공식적으로 확인된 별세 시점은 8월 15일 오전 6시41분이다. KBO 역시 공식 안내를 통해 같은 시각을 별세 시간으로 발표했다.
따라서 14일 별세로 기록된 초기 일부 보도보다 KBO와 유족 측이 최종적으로 확인한 15일 오전 6시41분을 기준으로 보는 것이 정확하다.
한국 프로야구 역사에 단 하나…1982년 타율 0.412
백인천의 이름을 불멸의 기록으로 만든 것은 1982년이었다.
대한민국 프로야구가 출범한 바로 그해, 백인천은 MBC 청룡의 감독과 선수를 동시에 맡는 ‘플레잉 매니저’로 그라운드에 섰다.
그해 성적은 지금 다시 보더라도 놀랍다.
KBO 공식 기록에 따르면 백인천은 250타수 103안타, 타율 0.412로 초대 수위타자가 됐다.
72경기에 출전해 4할을 넘어선 타율을 시즌 마지막까지 유지했다. 당시 프로야구 정규시즌은 팀당 80경기로 오늘날 144경기 체제보다 훨씬 짧았다는 점은 기록을 평가할 때 고려할 필요가 있다. 하지만 규정 타석을 채우고 공식 수위타자가 된 0.412가 KBO의 정식 시즌 기록이라는 사실에는 변함이 없다.
무엇보다 1982년 이후 44년 동안 KBO리그에서 시즌 타율 4할을 기록한 선수는 한 명도 나오지 않았다.
1994년 해태 타이거즈 이종범이 타율 0.393을 기록하며 가장 가까이 접근했고, 1987년 삼성의 장효조가 0.387을 기록했지만 4할 벽은 끝내 넘지 못했다. KBO 역대 수위타자 기록에서도 백인천의 0.412는 여전히 가장 위에 남아 있다.
정확하기만 했던 타자가 아니다…홈런 19개·64타점
백인천의 1982년 기록은 단순히 안타를 많이 치는 교타자의 기록도 아니었다.
그는 그해 19홈런과 64타점을 기록하며 홈런과 타점에서도 리그 최상위권에 올랐다. 당시 기록을 분석한 자료에 따르면 장타율도 0.740에 달했다.
즉 공을 정확하게 맞히는 능력과 장타력을 동시에 갖췄던 타자였다.
40세에 가까운 나이에 감독 업무까지 함께 수행하면서 남긴 기록이라는 점도 백인천의 4할을 특별하게 만드는 요소다.
시즌 일정과 선수층, 투수 운용 방식이 현재와 달랐다는 점에서 시대를 초월한 단순 비교에는 한계가 있지만, KBO가 출범한 이후 공식적으로 4할을 완주한 타자가 백인천 한 명뿐이라는 사실 자체는 변하지 않는다.
일본에서 먼저 정상에 섰다…19년 동안 1,831안타
백인천의 프로야구 경력은 한국에서 시작되지 않았다.
일본야구기구(NPB) 공식 기록에 따르면 그는 1963년 일본프로야구 도에이 플라이어스에서 데뷔한 뒤 1981년까지 19시즌을 뛰었다.
도에이와 닛타쿠, 닛폰햄을 거쳐 다이헤이요 클럽 라이온즈, 롯데 오리온스, 긴테쓰 버펄로스 등에서 활약했다.
NPB 통산 기록은 1,969경기, 1,831안타, 209홈런, 776타점, 212도루, 타율 0.278이다.
특히 1975년 다이헤이요 소속으로 379타수 121안타, 타율 0.319를 기록해 퍼시픽리그 타격 1위에 올랐다.
한국 프로야구가 만들어지기 전에 이미 세계적으로 수준이 높았던 일본프로야구에서 수위타자가 된 선수였다는 점에서 그의 1982년 4할은 갑자기 등장한 기록이 아니었다.
19년 일본 생활 끝내고 한국으로…프로야구 원년의 얼굴이 되다
1982년 한국 프로야구 출범은 백인천의 야구 인생을 다시 한 번 바꿨다.
오랜 일본 생활을 마친 그는 MBC 청룡의 초대 감독 겸 선수로 한국 프로야구에 합류했다.
한국 프로야구 역사적인 첫 경기였던 1982년 3월27일 동대문야구장 삼성 라이온즈전에도 MBC 청룡의 중심 선수로 출전했다. 이날 경기는 연장 10회 이종도의 끝내기 만루홈런으로 MBC가 11대7로 승리하며 한국 프로야구의 첫 페이지를 장식했다.
그리고 백인천은 그해 리그 최초의 타격왕이 됐다.
‘프로야구 원년’과 ‘유일한 4할’이 한 사람에게 동시에 연결되면서 백인천이라는 이름은 한국 야구의 출발점과 떼려야 뗄 수 없는 존재가 됐다.
선수에서 감독으로…1990년 LG 창단 첫해 우승
선수로서의 기록만큼 지도자로서도 한국 프로야구 역사에 중요한 장면을 남겼다.
1990년 럭키금성그룹이 MBC 청룡을 인수해 LG 트윈스를 창단하자 백인천은 초대 감독을 맡았다.
그리고 LG는 창단 첫해 곧바로 한국시리즈 정상에 올랐다. 백 감독은 LG의 첫 우승을 지휘한 사령탑이 됐다.
LG 구단 역사에서 그의 의미가 큰 이유다.
LG는 백 전 감독의 별세 당일인 15일 잠실 SSG 랜더스전에 앞서 전광판에 추모 메시지를 띄우고 선수단과 팬들이 함께 묵념했다.
삼성에서 만난 젊은 이승엽…‘국민타자’ 성장에 영향을 주다
백인천 전 감독을 이야기할 때 빼놓기 어려운 또 한 명의 인물이 이승엽이다.
백 전 감독은 1990년대 중반 삼성 라이온즈 감독으로 재직하면서 젊은 이승엽을 지도했다. 이 과정에서 이승엽의 장타력을 끌어내기 위한 타격 훈련과 이른바 ‘외다리 타법’ 정착에 영향을 준 지도자로 널리 알려져 있다.
백 전 감독의 별세 소식이 알려지자 이승엽은 SNS를 통해 고인을 추모했다.
그는 자신이 젊은 선수였을 당시 백 감독이 한국 최고의 선수가 되고 일본 프로야구에도 진출해야 한다는 더 큰 목표를 제시해줬다고 회고했다. 혹독한 훈련과 가르침이 자신의 선수 생활에 결정적인 영향을 줬다는 취지의 감사도 전했다.
실제로 이승엽은 이후 한국을 대표하는 홈런 타자로 성장했고 일본프로야구에도 진출했다.
지도자 경력이 모두 성공적이었던 것은 아니다
백인천의 지도자 생활을 우승과 스타 선수 육성만으로 평가하는 것도 정확하지는 않다.
LG에서 창단 첫해 우승이라는 최고의 성과를 냈지만 이후 삼성과 롯데 감독 시절에는 기대만큼의 성적을 거두지 못한 시기도 있었다.
특히 2002년 6월 롯데의 제10대 감독으로 부임한 뒤 팀 재건을 시도했으나 성적 부진과 팀 운영을 둘러싼 논란 속에 2003년 시즌 도중 지휘봉을 내려놨다.
따라서 지도자로서 백인천의 평가는 선수 시절처럼 일방적인 성공의 역사라기보다는 1990년 LG의 정상 등극과 타격 지도 능력이라는 뚜렷한 성취, 그리고 일부 팀에서의 시행착오가 함께 존재하는 경력으로 보는 것이 객관적이다.
네 차례 뇌경색에도 다시 일어났던 야구인
현역과 지도자 생활을 마친 뒤 백 전 감독은 해설과 야구계 활동을 이어갔다.
그러나 말년에는 건강 문제가 계속됐다.
야구계와 유족 측 설명에 따르면 그는 네 차례 뇌경색을 겪은 뒤에도 재활치료를 하며 생활해 왔다. 14일에도 심정지 상태에서 심폐소생술을 받고 다시 맥박을 회복할 만큼 마지막까지 생사를 오가는 상황이 이어졌다.
결국 15일 오전 6시41분 긴 투병을 마쳤다.
KBO, 역대 두 번째 ‘KBO장’ 결정
KBO는 백 전 감독이 한국 야구 발전에 남긴 공적을 기려 장례를 ‘KBO장’으로 치르기로 했다.
KBO장이 치러지는 것은 2025년 9월 이용일 전 KBO 총재 직무대행에 이어 역대 두 번째다.
장례위원장은 김소식 전 대한야구협회 부회장이 맡고 KBO와 유족이 공동으로 장례 절차를 진행한다.
빈소는 충남 천안 단국대학교병원 장례식장 2층 전통실에 마련됐으며 발인은 8월17일 오전 8시다.
유영구 전 KBO 총재, 일구회 관계자와 원로 야구인들이 빈소를 찾았고, LG그룹 구광모 회장과 이승엽 등 야구계 인사들이 조화를 보내 고인을 추모했다. 허구연 KBO 총재도 조문할 예정이다.
전국 5개 구장에서 동시에 추모…10개 구단이 고개 숙였다
백 전 감독이 세상을 떠난 15일, 프로야구 경기장에서도 추모가 이어졌다.
전국 5개 구장에서 열린 KBO리그 경기에 앞서 양 팀 선수단과 팬들이 백 전 감독을 기리는 묵념을 진행했다.
특히 LG는 1990년 창단 첫 우승을 이끈 초대 감독을 별도로 기렸다.
삼성 역시 백 전 감독이 사령탑을 맡았던 인연을 떠올리며 경기 전에 추모의 시간을 가졌다.
한 명의 전직 감독을 넘어 한국 프로야구 전체가 한 시대의 야구인을 배웅하는 모습이었다.
이재명 대통령도 추모…“한국 프로야구 한 시대를 빛낸 분”
정치권에서도 애도의 메시지가 나왔다.
이재명 대통령은 15일 SNS를 통해 백 전 감독의 별세에 애도를 표하면서 그가 1982년 기록한 타율 0.412와 선수·지도자로서 한국 프로야구 발전에 기여한 점을 언급했다.
대통령이 직접 프로야구 원로의 별세에 추모 메시지를 낸 것은 백 전 감독이 단순히 한 구단의 스타를 넘어 한국 프로스포츠의 초기 역사를 상징하는 인물이라는 점을 보여준다.
‘0.412’는 앞으로도 깨지지 않는 기록일까
백인천의 별세와 함께 야구팬들의 관심은 다시 한 번 0.412라는 숫자로 향하고 있다.
프로야구가 144경기 체제로 확대되고 투수 분업이 정교해진 현대 야구에서는 한 선수가 시즌 전체에서 4할을 유지하기가 더욱 어렵다는 평가가 많다.
실제로 1982년 이후 가장 근접했던 이종범도 1994년 시즌 막판까지 4할에 도전했지만 최종 타율 0.393으로 시즌을 마쳤다.
2015년 NC 다이노스의 에릭 테임즈도 일부 기간에서 4할 이상의 강력한 타격을 이어갔지만 최종 성적은 0.381이었다.
백인천 역시 생전에 자신의 기록이 쉽게 깨지지는 않을 것이라는 강한 자부심을 나타낸 적이 있다.
언젠가 새로운 4할 타자가 등장할 가능성을 누구도 배제할 수는 없다.
하지만 적어도 2026년 현재까지 KBO 기록표의 맨 위에는 여전히 1982년, MBC, 백인천, 250타수 103안타, 0.412가 적혀 있다.
한일 야구를 모두 경험한 ‘경계의 야구인’
백인천이 남긴 또 하나의 역사적 의미는 한국과 일본 야구를 모두 정상급 선수로 경험했다는 점이다.
한국 프로야구가 존재하지 않았던 시절 일본으로 건너가 19년간 살아남았고 퍼시픽리그 수위타자가 됐다.
그리고 선수 생활의 마지막에는 고국으로 돌아와 막 출범한 한국 프로야구의 감독 겸 선수가 됐다.
일본에서는 1,831안타와 209홈런, 한국에서는 유일한 4할 타율, 지도자가 된 뒤에는 LG의 창단 첫 한국시리즈 우승을 남겼다.
백인천이라는 한 사람의 야구 인생을 따라가면 한국 프로야구가 만들어지기 이전부터 출범과 성장기를 지나 현대 프로야구로 이어지는 과정의 상당 부분이 겹쳐 보이는 이유다.
떠난 것은 사람이지만 ‘4할’은 한국 야구사에 남는다
야구 기록은 언젠가 깨지기 위해 존재한다고 한다.
그러나 백인천의 0.412는 1982년 이후 44년 동안 깨지지 않았다.
그 기록이 언젠가 새로운 선수에 의해 넘어선다 하더라도 백인천이 갖는 역사적 의미까지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그는 한국 프로야구가 첫발을 내디딘 순간에 선수이자 감독으로 그라운드에 있었고, 첫해 타격왕과 유일한 4할 타자가 됐다.
일본에서 수위타자를 차지했고, 국내에서는 감독으로 한국시리즈 우승을 경험했으며, 이후 세대의 타자들을 지도했다.
‘4할 타자 백인천’이라는 표현은 단순한 기록의 수식어가 아니라 한국 프로야구의 시작을 기억하게 하는 하나의 역사적 상징에 가깝다.
2026년 8월15일.
한국 야구의 한 시대를 직접 뛰고 만들었던 전설은 그라운드를 떠났다.
그러나 KBO 공식 기록에 새겨진 0.412와 그가 한국 야구에 남긴 흔적은 앞으로도 오랫동안 야구팬들의 기억 속에 남게 될 것이다.
기사 기준시각: 2026년 8월15일 오후 10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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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extINsightNews 김귤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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