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세에 비밀결사 ‘백두산회’ 가입…함북 성진 일대 항일투쟁하다 일경에 체포

1944년 치안유지법 위반으로 징역형, 김천형무소서 광복 맞아…1990년 건국훈장 애족장
광복 81주년 ‘불후의 명곡’서 딸 홍지민이 아버지에게 바치는 헌정 무대…‘무명의 독립운동가’를 다시 기억하다
광복 81주년을 맞은 2026년 8월 15일, 뮤지컬 배우 홍지민의 가족사가 다시 한 번 대중의 관심을 끌었다.
화려한 무대 위에서 오랜 시간 관객과 만나온 홍지민의 아버지가 일제강점기 불과 16세의 나이에 항일운동에 뛰어든 독립운동가 고(故) 홍창식 선생이라는 사실이 알려지면서다.
홍창식 선생의 이름은 안중근·윤봉길·유관순처럼 국민 대부분이 알고 있는 독립운동가의 이름은 아니다.
그러나 국가가 공식적으로 그의 독립운동 공적을 인정했다는 사실은 분명하다. 홍 선생은 1942년 비밀결사 ‘백두산회’에 가입해 함경북도 성진 일대에서 항일운동을 벌였고, 일제 경찰에 체포돼 옥고를 치렀다. 정부는 그의 공훈을 인정해 1982년 대통령표창, 1990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수여했다.
1926년생 홍창식…16세 소년이 독립운동에 뛰어들다
홍창식 선생은 1926년 태어나 1992년 세상을 떠났다.
공훈전자사료관 내용을 인용한 경기도 자료에 따르면 홍 선생은 1942년 1월 초 김세보의 영향을 받아 독립운동에 투신하기로 결심하고 비밀결사 ‘백두산회’에 가입했다.
당시 그의 나이는 불과 16세였다.
홍 선생은 양창순의 지도 아래 최학준·이승대·김동호·최이모 등 동지들과 함께 함경북도 성진 일대에서 항일투쟁을 전개했다.
그러나 이듬해인 1943년 3월 홍창식 선생을 비롯해 김세보·양창순·박종대·심시준 등 동지 9명이 일제 경찰에 체포됐다.
16세에 독립운동에 뛰어들어 17세 무렵 체포된 셈이다.
청진지방법원에서 징역형…김천형무소에서 광복 맞아
홍창식 선생은 체포 이후 재판에 넘겨졌다.
공훈전자사료관을 토대로 한 기록에 따르면 1944년 5월 16일 청진지방법원에서 치안유지법 위반으로 징역 단기 1년, 장기 3년형을 선고받았다.
이후 김천형무소에 수감돼 옥고를 치렀다.
그가 감옥을 나온 것은 형기를 정상적으로 마쳐서가 아니었다.
1945년 8월 15일 일본의 패망과 함께 조국이 광복을 맞으면서 홍 선생도 형무소에서 풀려날 수 있었다.
홍지민에게 광복절이 단순한 국가 기념일 이상의 의미를 갖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홍 씨는 과거 인터뷰에서 아버지가 옥중에서 해방 소식을 들었고, 광복으로 가족에게 돌아올 수 있었다는 사실을 설명하며 광복절이 자신의 가족에게도 특별한 날이라고 밝혔다.
‘일본 군수물자 폭파 임무’…방송에서 소개된 독립운동 내용
2026년 광복절 KBS2 ‘불후의 명곡’ 제작진은 홍창식 선생을 소개하면서 백두산회에서 일본 군수물자를 폭파하는 임무를 수행한 독립운동가라고 설명했다.
다만 역사 기사를 작성할 때는 이 부분을 구분해서 볼 필요가 있다.
국가 공훈 기록을 토대로 작성된 자료에서는 홍 선생이 백두산회에 가입해 성진 일대에서 항일투쟁을 펼쳤다는 사실과 체포·수형 사실이 구체적으로 기록돼 있다.
반면 ‘일본 군수물자 폭파 임무’라는 표현은 이번 KBS 프로그램 소개 자료와 이를 인용한 보도에서 확인되는 내용이다.
따라서 홍 선생이 독립운동가였다는 사실과 백두산회 활동, 일제에 의한 체포·수형은 공식 공훈 자료로 확인되며, 구체적인 군수물자 폭파 임무에 대해서는 방송에서 소개된 추가적인 활동 내용으로 이해하는 것이 객관적이다.
그런데 딸 홍지민은 왜 아버지의 독립운동을 몰랐을까
이번 이야기가 더욱 관심을 끈 이유는 홍지민 자신도 어린 시절부터 아버지의 독립운동 경력을 자세히 알고 있었던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홍지민은 ‘불후의 명곡’에서 아버지가 건국훈장 애족장을 받은 뒤에야 그의 독립운동 이력을 알게 됐다고 밝혔다.
홍창식 선생은 이북 출신이었다.
방송을 통해 소개된 홍지민의 설명에 따르면 홍 선생은 해방 이후 좌우 이념 갈등이 극심했던 상황에서 불필요한 오해나 갈등에 휘말리는 것을 경계해 자신의 독립운동 경력을 가족에게도 적극적으로 이야기하지 않았다고 한다.
그 결과 딸에게 아버지는 오랫동안 ‘독립운동가 홍창식’보다 평범한 가족의 아버지로 기억됐다.
홍지민은 자신의 기억 속 아버지에 대해 독립운동가 이전에 음악과 책을 사랑하고 주변 사람에게 나누는 것을 좋아했던 사람이었다고 회상했다.
아버지가 세상을 떠났을 당시 자신이 아직 젊었기 때문에 독립운동 이야기를 충분히 듣지 못했고 생전에 자랑스럽다는 말을 많이 해드리지 못한 것이 마음에 남는다는 취지의 이야기도 했다.
1982년 대통령표창, 1990년 건국훈장 애족장
홍창식 선생의 독립운동 공적은 대한민국 정부의 공식 서훈으로 이어졌다.
정부는 1982년 대통령표창을 수여했고 1990년에는 건국훈장 애족장을 수여했다.
건국훈장은 대한민국 건국에 공로가 뚜렷하거나 국가의 기초를 공고히 하는 데 기여한 사람에게 수여하는 훈장이다.
홍 선생의 경우 어린 나이에 비밀결사에 가입해 항일운동을 벌이다 체포돼 실형을 선고받고 옥고를 치른 사실이 독립유공자로 인정받은 핵심 공적이다.
그가 세상을 떠난 것은 1992년이다.
건국훈장 애족장을 받은 지 약 2년 뒤였다.
광복 81주년 ‘불후의 명곡’…잘 알려지지 않은 독립운동가들을 다시 조명
홍창식 선생의 이야기가 다시 알려진 직접적인 계기는 2026년 8월 15일 방송된 KBS2 ‘불후의 명곡’ 광복 81주년 특집이다.
이번 방송의 주제는 ‘광복 81주년 무명의 헌신, 불멸의 노래’였다.
프로그램은 대중에게 상대적으로 잘 알려지지 않은 독립운동가 6명의 삶을 음악을 통해 다시 조명하는 방식으로 구성됐다.
독립유공자 후손 52명도 명곡판정단으로 초청됐다.
홍지민은 뮤지컬 배우 양준모와 함께 자신의 아버지 홍창식 선생을 기리는 무대에 올랐다.
그동안 한 사람의 뮤지컬 배우로 관객 앞에 섰던 홍지민이 이날만큼은 독립운동가의 딸이자 후손의 한 사람으로 무대에 선 것이다.
‘무명 독립운동가’라는 표현이 갖는 의미
엄밀하게 말하면 홍창식 선생이 기록에 없는 ‘이름 없는 독립운동가’인 것은 아니다.
정부 포상을 받은 독립유공자이고 공훈 기록도 남아 있다.
따라서 여기에서 사용되는 ‘무명 독립운동가’는 독립운동 사실이 확인되지 않았다는 의미가 아니라, 공적에 비해 대중에게 이름이 널리 알려지지 않았다는 의미로 이해해야 한다.
우리에게 익숙한 독립운동사는 흔히 몇몇 상징적인 인물을 중심으로 기억된다.
그러나 일제강점기 독립운동은 수많은 지역과 조직, 학생·농민·노동자·종교인·청년들이 참여한 거대한 역사였다.
홍창식 선생처럼 십대의 나이에 비밀결사에 가입해 이름이 널리 알려지지 않은 채 일제의 감옥에서 광복을 맞은 사람들도 그 역사 속에 존재한다.
그런 점에서 이번 방송의 의미는 한 연예인의 가족사를 공개했다는 데 그치지 않는다.
공훈 기록 속에 이름은 남아 있지만 대중의 기억에서는 멀어졌던 독립운동가를 다시 현재로 불러냈다는 점에 보다 큰 의미가 있다.
16세 소년에게 ‘독립’은 어떤 의미였을까
1942년은 일제의 전쟁 동원이 극에 달하던 시기였다.
태평양전쟁이 진행되고 있었고 조선에서는 인적·물적 자원의 강제 동원이 더욱 강화됐다.
그 시기에 16세 소년 홍창식은 비밀결사에 가입했다.
현재의 기준으로 보면 중·고등학생 또래의 나이다.
그가 어떤 마음으로 독립운동에 뛰어들었는지 모든 심경을 기록으로 확인할 수는 없지만, 그 선택의 결과가 얼마나 위험했는지는 이후의 삶이 보여준다.
17세 무렵 일경에 체포됐고 1944년 일제 법원에서 실형을 선고받아 김천형무소에 수감됐다.
그리고 감옥 안에서 조국의 광복을 맞았다.
오늘날 그의 이름이 다시 언급되는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다.
독립운동의 역사는 반드시 유명한 지도자들만의 역사가 아니었다.
누군가는 독립선언서를 썼고, 누군가는 거리에서 만세를 외쳤으며, 누군가는 해외에서 무장투쟁을 벌였다.
또 홍창식과 같은 젊은이들은 지역의 비밀조직에서 자신의 역할을 맡았다.
그 수많은 개인의 선택이 모여 독립운동의 역사를 만들었다.
홍지민의 무대가 남긴 질문…우리는 얼마나 많은 이름을 기억하고 있나
홍지민이 광복 81주년 무대에서 아버지를 이야기하면서 결국 우리 사회에 남긴 질문은 하나다.
우리는 독립을 위해 싸웠던 사람들을 얼마나 알고 있는가.
홍창식 선생의 이름 역시 이번 방송을 통해 처음 접한 사람이 적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그의 독립운동 경력은 갑자기 만들어진 이야기가 아니다.
1982년 대통령표창을 받았고 1990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받았으며 국가의 독립유공자 기록 속에 그의 행적이 남아 있다.
달라진 것은 그의 역사가 아니라 우리가 그 이름을 다시 바라보게 됐다는 점이다.
광복 81년.
1945년 8월 15일 감옥의 문이 열리면서 자유를 되찾은 한 젊은 독립운동가는 세월이 흐른 뒤 딸의 노래와 이야기를 통해 다시 대중 앞에 섰다.
뮤지컬 배우 홍지민의 아버지이기 전에 그는 16세에 조국의 독립을 선택했던 홍창식이라는 한 사람의 독립운동가였다.
그리고 그의 이야기는 대한민국 독립운동사가 몇몇 유명한 이름만으로 완성된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다시 일깨운다.
기억되지 않는다고 역사가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우리가 그 이름을 다시 부를 때 역사는 비로소 현재의 이야기가 된다.
기사 기준: 2026년 8월 15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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