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 줄였는데 소비자는 반겼다…‘슈링크플레이션’과 다른 식품업계의 새 가성비

용량 축소보다 더 큰 가격 인하…고물가·1인 가구 시대, 식품업계가 다시 설계하는 ‘가성비’

식품 가격은 그대로인데 양만 줄어드는 ‘슈링크플레이션’에 소비자는 분노했다. 그런데 최근에는 양을 줄인 제품이 오히려 소비자의 선택을 받고 있다. 차이는 하나다. 양보다 가격을 더 크게 낮췄다.

컵커피는 250㎖에서 200㎖로 작아졌지만 1,300원이던 가격은 900원으로 내려갔고, 한식뷔페는 메뉴를 100여 종에서 60여 종으로 줄이는 대신 저녁 가격을 1만원 가까이 낮췄다. ‘많이 주고 비싸게 받는 상품’ 대신 ‘필요한 만큼 주고 부담 없는 가격을 받는 상품’이 등장한 것이다.

단순한 불황형 할인으로 보기에는 변화가 깊다. 고물가와 소비 위축에 1·2인 가구 증가까지 겹치면서 한국 소비자가 생각하는 ‘가성비’의 기준 자체가 달라지고 있다.

900원 컵커피의 역설…양 20% 줄이고 가격 31% 인하

남양유업은 8월 초 ‘프렌치카페 악마의유혹’ 카페라떼·바닐라라떼 신제품을 200㎖, 900원에 출시했다. 기존 250㎖ 제품의 가격은 1,300원이었다. 용량은 50㎖, 20% 줄었지만 가격은 400원, 약 31% 낮아졌다.

반응은 예상보다 빨랐다. 출시 약 3주 만에 단일 도매 경로 기준 주문량이 12만 봉을 넘어섰고 초도 생산 물량이 소진되면서 추가 생산에 들어갔다고 회사 측은 밝혔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900원이라는 가격표만이 아니다.

기존 제품은 1㎖당 약 5.2원, 신제품은 약 4.5원이다. 용량뿐 아니라 단위가격도 약 13.5% 낮아졌다. 소비자가 같은 양을 기준으로 비교해도 신제품이 더 싸다는 의미다.

바로 이 지점에서 슈링크플레이션과 갈라진다.

슈링크플레이션은 가격을 유지하면서 내용량을 줄여 소비자가 사실상 가격 인상을 알아채기 어렵게 만드는 방식이다. 반면 이번 사례는 제품을 작게 만들되 가격을 그보다 더 크게 낮춰 소비자가 한 번 구매할 때 지불해야 하는 금액 자체를 줄였다.

둘 다 ‘양이 줄었다’는 외형은 같지만 경제적 성격은 정반대다.

‘몰래 줄인 양’과 ‘대놓고 낮춘 가격’의 차이

정부가 슈링크플레이션 규제를 강화한 이유도 여기에 있다.

2025년 1월부터 내용량이 줄어든 식품은 변경일로부터 3개월 이상 제품에 내용량 변경 사실을 표시해야 한다. 식품의약품안전처는 올해 4월 내용량 축소 사실을 제대로 표시하지 않은 경우 제재를 강화하는 내용의 시행규칙 개정안도 입법예고했다.

핵심은 소비자가 가격 변화를 제대로 인지할 수 있느냐다.

가격은 1,000원 그대로인데 과자가 100g에서 80g으로 줄었다면 1g당 가격은 25% 오른다. 반대로 양이 20% 줄면서 가격이 30% 내려간다면 소비자는 더 적은 양을 사지만 단위가격까지 낮아진다.

따라서 ‘용량 축소=소비자에게 불리한 상품’이라는 공식만으로 최근 현상을 설명하기 어렵다.

식품업계가 새롭게 실험하는 것은 제품 크기가 아니라 구매의 문턱이다.

100개 메뉴를 60개로…외식업도 ‘덜 주고 덜 받는’ 실험

같은 변화는 외식업에서도 나타난다.

이랜드이츠의 한식뷔페 자연별곡은 약 100종이던 메뉴를 60종 정도로 압축했다. 대신 보쌈·제육볶음·나물·무침 등 이용 빈도가 높은 한식 중심으로 메뉴를 다시 구성했다.

가격 변화는 더 크다. 평일 점심은 1만9,900원에서 1만5,900원, 평일 저녁은 2만5,900원에서 1만5,900원으로 낮췄다. 주말·공휴일 가격도 2만7,900원에서 1만9,900원으로 조정했다.

새로운 방식을 적용한 평촌점은 지난달부터 8월 24일까지 전년 같은 기간보다 고객 수가 약 50% 늘었고 매출도 약 11% 증가한 것으로 전해졌다.

주목할 부분은 고객 증가율이 매출 증가율보다 훨씬 높다는 점이다.

높은 객단가를 유지하면서 적은 고객에게 많이 받는 대신 한 사람에게 받는 금액을 낮추고 더 많은 사람을 매장으로 끌어들이는 방식으로 전략이 바뀌고 있다는 신호로 읽을 수 있다.

메뉴를 줄이는 것도 단순한 원가 절감이 아니다. 식재료 종류가 줄면 발주·보관·조리·폐기 과정이 단순해지고 운영 효율을 높일 수 있다. 기업은 이 과정에서 확보한 비용 여력을 가격에 일부 반영하고, 소비자는 선택권 일부를 포기하는 대신 더 낮은 가격을 얻는다.

써브웨이가 15㎝ 단일 사이즈와 고정된 재료 구성으로 선택 과정을 단순화한 ‘피자썹’을 4,300원에 출시하고 다른 제품 가격 인상 이후에도 해당 가격을 유지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상품을 싸게 파는 것이 아니라, 싸게 팔 수 있도록 상품 자체를 다시 설계하는 전략​이다.

소비가 멈춘 것이 아니라 ‘한 번의 지출’을 줄이는 소비

이 현상을 단순히 “경기가 나빠져 싼 것만 찾는다”고 설명하면 절반만 맞는다.

국가데이터처가 8월 27일 발표한 2026년 2분기 가계동향조사를 보면 가구당 월평균 소득은 529만5,000원으로 전년 동기보다 4.5% 증가했다. 그러나 물가를 반영한 실질소득 증가율은 1.5%에 그쳤다.

월평균 소비지출은 293만2,000원으로 3.4% 증가했지만 평균소비성향은 69.2%로 1년 전보다 1.2%포인트 낮아졌다.

소비자가 지갑을 완전히 닫았다고 보기는 어렵지만, 소득이 늘었다고 해서 그만큼 소비를 확대하지도 않는 상황이다.

물가 부담도 사라지지 않았다. 2026년 7월 소비자물가는 전년 동월보다 2.8%, 생활물가는 2.5% 상승했다. 생활물가 가운데 식품도 1.6% 올랐다.

이런 환경에서는 소비자가 100g당 몇 원이 싼지를 계산하기 전에 계산대에서 당장 지불해야 하는 금액부터 본다.

1만원짜리 대용량 상품이 5,000원짜리 상품보다 단위가격은 싸더라도, 혼자 사는 소비자에게 필요한 양이 절반뿐이라면 이야기는 달라진다. 남은 절반을 버리거나 억지로 소비해야 한다면 ‘대용량 할인’이 반드시 경제적인 선택은 아니다.

가성비 계산에 ‘폐기 비용’과 ‘현금 지출’이 들어오기 시작한 것이다.

1·2인 가구 65.1%…불황만으로 설명할 수 없는 변화

더 중요한 이유는 인구구조에 있다.

국가 통계에서 2024년 일반가구 가운데 1인 가구는 36.1%, 2인 가구는 29.0%를 차지했다. 둘을 합하면 **65.1%**다. 세 가구 가운데 두 가구 가까이가 한 명 또는 두 명으로 구성돼 있다.

4인 가족을 전제로 만들어졌던 식품산업의 전통적인 ‘대용량=가성비’ 공식과 실제 가구 구조 사이에 틈이 커진 셈이다.

올해 들어 식품·유통업계에서 소용량 상품이 확대되는 배경에도 이 변화가 있다. 햄·호빵부터 쌀·채소·과일까지 소량 또는 낱개 단위 상품이 늘고 있으며, 업계에서는 1·2인 가구 증가와 음식물 폐기를 줄이려는 소비가 주요 배경으로 지목되고 있다.

따라서 최근의 작은 제품을 ‘불황이 지나가면 사라질 상품’이라고 단정하기 어렵다.

경기는 순환하지만 가구의 소형화는 구조적 변화이기 때문이다.

작은 제품이 항상 싼 것은 아니다…소비자가 봐야 할 숫자

다만 식품업계의 소용량 전략을 무조건 소비자 친화적이라고 보는 것도 경계해야 한다.

소용량 제품은 포장재·물류·진열 비용 때문에 같은 제품의 대용량 상품보다 100g 또는 100㎖당 가격이 비싼 경우가 흔하다. 소비자가 보는 가격표는 낮아졌지만 실제 단위가격은 오히려 높아질 수도 있다.

그래서 중요한 기준은 두 가지다.

‘내가 지금 얼마를 지불하는가’와 ‘같은 양을 기준으로 얼마를 지불하는가’다.

정부가 올해 4월부터 라면 등 가공식품 76개를 포함해 생활필수품 114개 품목의 단위가격 표시제를 대규모 온라인쇼핑몰까지 확대 적용한 것도 이런 비교를 가능하게 하기 위해서다.

소용량 상품은 적게 사서 남기지 않는다는 점에서는 경제적일 수 있지만, 많이 소비하는 가구라면 대용량 제품이 여전히 유리하다.

앞으로의 ‘가성비’는 하나의 숫자로 결정되지 않는다.

가격, 용량, 소비 인원, 보관 기간, 폐기 가능성까지 합쳐야 진짜 비용이 나온다.

Next Insight 분석 | ‘많이 주는 가성비’에서 ‘필요한 만큼의 가성비’로

이번 변화의 본질은 식품이 작아졌다는 데 있지 않다.

오랫동안 한국 식품시장에서 가성비는 같은 돈으로 얼마나 많이 받을 수 있는가를 의미했다. 1+1, 대용량, 패밀리팩, 무한리필이 그 공식 위에서 성장했다.

그러나 가구가 작아지고 물가 부담이 누적되면서 소비자의 계산 방식이 달라지고 있다.

이제는 ‘100g당 가장 싼 상품’보다 오늘 필요한 만큼을 가장 적은 돈으로 살 수 있는 상품이 선택될 수 있다. 많이 사서 싸게 먹는 소비에서, 적게 사고 버리지 않는 소비로 기준이 이동하는 것이다.

기업 입장에서도 중요한 변화다. 원재료·인건비·물류비가 오르는 상황에서 가격을 계속 올리면 소비자가 이탈하고, 가격을 억지로 묶으면 수익성이 악화된다. 그렇다면 세 번째 길은 상품 구성과 운영방식을 단순화해 절감한 비용으로 소비자가 체감하는 판매가격을 낮추는 것이다.

남양유업은 용량을 줄였고, 자연별곡은 메뉴를 줄였으며, 써브웨이는 선택지를 줄였다.

서로 다른 기업이 줄인 것은 다르지만 목표는 같다.

소비자가 계산대 앞에서 느끼는 부담을 줄이는 것이다.

그래서 최근의 ‘작은 가성비’는 슈링크플레이션보다 훨씬 중요한 시장 신호일 수 있다. 슈링크플레이션이 기업이 비용 상승을 소비자에게 보이지 않게 이전하려는 방식이었다면, 지금 등장하는 모델은 비용 상승을 인정한 상태에서 소비자가 감당할 수 있는 새로운 구매 단위를 찾아가는 과정에 가깝다.

다만 이 전략이 장기적으로 살아남으려면 조건이 있다. 낮아진 가격이 단순한 착시가 되어서는 안 된다. 소비자가 단위가격을 비교했을 때 지나치게 불리하지 않고, 줄어든 양이나 선택권보다 낮아진 가격에서 얻는 효용이 더 커야 한다.

결국 소비자는 더 이상 무조건 ‘많이 주는 상품’을 원하는 것이 아닐 수 있다.

적당한 양, 버리지 않는 양, 그리고 망설이지 않고 결제할 수 있는 가격.

식품업계가 발견하기 시작한 새로운 가성비의 기준이다.

취재·작성: 김귤연 기자 | Next Insight News
nextinsight.news@gmail.com

참고자료

  • 연합뉴스, 「식품업계, 양·메뉴 줄이고 가격도 인하…‘불황형 가성비’ 확산」, 2026.8.31.
  • 국가데이터처, 「2026년 2/4분기 가계동향조사 결과」, 2026.8.27.
  • 국가데이터처, 「2026년 7월 소비자물가동향」, 2026.8.4.
  • 국가데이터처, 생애단계별 행정통계 가구원수별 가구 자료.
  • 산업통상부, 「생활필수품 114개 품목 온라인 단위가격표시제 시행」, 2026.4.2.
  • 식품의약품안전처, 식품 내용량 변경 표시제 및 관련 시행규칙 개정자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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