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라인 시대의 오프라인 재발견…유통업계 새 핵심축 ‘VMD’의 부상

MD의 상품 경쟁력에서 VMD의 공간 경쟁력으로…달라진 유통의 승부처
2026년 상반기 팝업 2,130개, 전년 대비 44.9% 증가…‘매장 경험’의 산업화
진열·장식 넘어 상권 분석·고객 동선·SNS·데이터까지…넓어지는 VMD의 영역

유통업계에서 MD(Merchandiser)는 오랫동안 핵심 직무로 꼽혀왔다. 어떤 상품을 들여올지 결정하고 가격과 판매 물량, 마진, 프로모션 전략을 설계한다. 잘 팔릴 상품을 먼저 찾아내고 적절한 조건으로 확보하는 능력이 MD의 경쟁력이다.

최근 오프라인 유통 현장에서는 또 하나의 기획 직무가 빠르게 중요해지고 있다.

VMD(Visual Merchandiser)다.

단순하게 구분하면 MD가 ‘무엇을 팔 것인가’​를 결정한다면 VMD는 ‘그 상품을 고객에게 어떻게 보여주고 경험시킬 것인가’​를 설계한다.

하지만 최근 변화는 이보다 훨씬 크다.

VMD의 업무가 쇼윈도와 마네킹, 상품 진열을 넘어 매장 콘셉트와 고객 동선, 팝업스토어, 브랜드 콘텐츠, 디지털 사이니지, 고객 행동 데이터까지 확대되고 있기 때문이다.

결국 유통업의 경쟁력이 좋은 상품을 확보하는 능력에서 좋은 상품을 발견하고 경험하게 만드는 능력까지 넓어지고 있다는 의미다.

온라인 성장의 역설, 오프라인의 재정의

VMD의 부상을 이해하려면 먼저 온라인 유통의 성장을 볼 필요가 있다.

산업통상부가 발표한 2025년 주요 유통업체 매출동향에 따르면 온라인 유통 매출은 전년보다 11.8% 증가한 반면 오프라인은 0.4% 증가에 그쳤다.

2021년부터 2025년까지 연평균 성장률에서도 온라인은 10.1%, 오프라인은 2.6%였다. 같은 기간 대형마트는 연평균 4.2% 감소했다.

이 숫자가 말하는 것은 단순한 온라인의 승리가 아니다.

소비자가 가격을 비교하고 상품 정보를 확인하고 결제하는 일은 이미 스마트폰 하나로 해결할 수 있다.

그렇다면 소비자가 굳이 시간과 교통비를 들여 오프라인 매장을 방문해야 할 이유는 무엇일까.

바로 여기서 오프라인 매장의 역할 변화가 시작된다.

과거 매장의 중심 기능이 상품의 보관과 진열, 판매​였다면 지금은 체험과 발견, 브랜드 경험, 콘텐츠 생산​이 중요한 기능으로 추가되고 있다.

산업통상부 역시 2025년 11월 유통동향에서 백화점 성장의 배경 가운데 하나로 ‘체험형 공간으로의 변화’를 언급했다.

온라인 유통이 성장할수록 역설적으로 오프라인 매장에는 온라인에서 제공하기 어려운 경험이 요구되는 구조다.

그리고 그 경험을 공간으로 구현하는 직무가 VMD다.

2,130개 팝업스토어, ‘공간 경쟁’의 숫자

VMD의 역할 확대를 가장 선명하게 보여주는 시장은 팝업스토어다.

팝업·상업공간 전문기업 스위트스팟이 집계한 자료에 따르면 2026년 상반기 전국에서 문을 연 팝업스토어는 2,130개​였다.

2025년 상반기 1,470개보다 44.9% 증가했다.

2024년 상반기 월평균 113개였던 팝업 오픈 수는 2025년 245개, 2026년에는 355개까지 증가했다. 불과 2년 사이 월평균 팝업 수가 3배 이상으로 커진 셈이다.

흥미로운 것은 운영기간이다.

2026년에는 일주일 이내의 단기 팝업 비중이 계속 늘었고, 전체의 44.5%가 금요일에 문을 열었다. 짧은 주말 동안 최대한 많은 방문객과 화제성을 확보하려는 전략이다.

이 구조에서는 공간을 천천히 개선할 시간이 없다.

개장 첫날부터 고객에게 콘셉트가 전달돼야 하고, 입구에서 시선을 끌어야 하며, 안으로 들어온 고객이 자연스럽게 핵심 상품까지 이동해야 한다.

사진을 찍을 장소와 SNS에 공유될 장면까지 고려해야 한다.

VMD의 경쟁력이 단순한 ‘예쁜 진열’에서 벗어나는 이유다.

팝업에서 플래그십까지, 공간의 사업성

팝업스토어의 역할도 달라지고 있다.

과거에는 신제품 출시나 단기 프로모션을 위한 이벤트 성격이 강했다면 최근에는 시장 반응을 확인하기 위한 테스트베드 기능이 커지고 있다.

서울 성수동이 대표적이다.

쿠시먼앤드웨이크필드 코리아 분석에 따르면 성수의 외국인 방문객은 2025년 전년보다 82% 증가했고 주요 매출 상위 10개 브랜드의 매출은 같은 기간 175% 증가했다.

브랜드가 성수에서 팝업스토어를 통해 시장 반응을 확인한 뒤 정식 매장이나 플래그십스토어로 확장하는 사례도 늘고 있다.

2026년 3월 기준 성수 상권의 월 매출 역시 전년 동월 대비 11% 증가했고, 주요 서울 상권 가운데 공실률은 3.7%로 가장 낮은 수준을 기록했다.

이 변화는 VMD의 역할에도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매장 디자인이 단순한 비용이 아니라 브랜드의 시장성을 검증하는 투자가 되기 때문이다.

어떤 고객이 들어오는지, 어느 상품 앞에 오래 머무는지, 어떤 공간이 SNS에서 확산되는지, 팝업 방문이 실제 구매와 브랜드 검색으로 이어지는지를 분석하면 공간 자체가 하나의 시장조사 도구가 된다.

VMD의 결과물이 경영 의사결정으로 연결되는 구조다.

채용공고 속 VMD, ‘진열 담당’ 이상의 역할

기업이 실제로 VMD에게 요구하는 업무를 보면 변화가 더욱 분명하다.

CJ올리브영의 최근 VMD 채용 공고에는 주요 매장과 신규 콘셉트 매장 기획, 공간 그래픽과 VMD 디자인 개발, 스토어 포맷별 디스플레이 전략, 카테고리별 집기 개발, 상품 진열 가이드 수립 등이 주요 업무로 제시돼 있다.

올리브영의 직무 소개에서도 브랜드 전략과 트렌드를 기반으로 한 공간 기획, 고객 쇼핑 경험 강화를 위한 VMD 개선 등이 명시돼 있다.

여기서 중요한 단어는 ‘진열’보다 ‘전략’과 ‘경험’​이다.

상품이 이미 정해진 뒤 VMD가 들어와 예쁘게 꾸미는 구조보다 매장 콘셉트를 결정하는 초기 단계부터 참여하는 구조에 가깝다.

VMD가 후반 작업자가 아니라 기획 초기의 참여자로 이동하고 있다는 의미다.

매장에서 미디어로, 리테일미디어의 확장

VMD의 다음 변화는 ‘매장의 미디어화’다.

최근 유통업계는 RMN(Retail Media Network·리테일미디어네트워크)을 새로운 수익원으로 키우고 있다.

이마트와 트레이더스는 오프라인 매장에 대형 LED와 디지털 광고매체를 설치하고 있으며, 150개가 넘는 점포를 활용한 RMN 사업을 운영하고 있다.

이마트의 관련 RMN 매출은 지난해 약 20% 증가했다.

이 변화가 중요한 이유는 매장의 벽과 통로, 진열대, 디지털 화면이 더 이상 단순한 인테리어가 아니기 때문이다.

광고를 노출하고 상품을 추천하고 고객을 특정 매대로 이동시키는 미디어 공간이 된다.

전통적인 VMD가

어느 상품을 어느 높이에 진열할 것인가

를 고민했다면 미래의 VMD는

어느 고객에게 어느 장소에서 어떤 메시지를 보여줄 것인가

까지 고민해야 할 가능성이 커진다.

공간 디자인과 광고, 데이터의 경계가 흐려지는 지점이다.

감각에서 데이터로, 숫자로 측정되는 매장

VMD는 전통적으로 감각과 경험이 중요한 직무였다.

그러나 매장에 센서와 카메라, 디지털 시스템이 들어오면서 공간의 성과를 수치화할 수 있는 영역이 넓어지고 있다.

딜로이트가 소개한 스마트리테일 사례에서는 CCTV 기반 객체 인식과 추적 기술을 이용해 고객 이동 경로와 진열대 상호작용을 수집하고, 이를 히트맵과 동선 데이터로 만들어 매장 레이아웃과 인력배치에 활용한다.

결과적으로 상품 진열과 고객 동선을 경험이나 직관만으로 결정하던 방식에서 데이터 기반 최적화가 가능해지는 구조다.

딜로이트의 2026 글로벌 리테일 전망에서도 AI는 올해 유통산업의 핵심 변화 가운데 하나로 꼽혔다.

330명의 글로벌 리테일 임원 조사에서 67%는 향후 1년 안에 AI 기반 개인화 역량을 보유할 것으로 예상했고, RMN을 운영하는 기업의 88%는 향후 1년간 RMN이 매출과 수익성에서 중요한 역할을 할 것으로 전망했다.

향후 VMD 역시 이러한 기술 변화의 밖에 있기 어렵다.

고객이 매장 어디에서 멈추는지, 어떤 상품을 집어 들었다가 내려놓는지, 어느 공간에서 체류시간이 길어지는지를 분석할 수 있다면 공간 배치 역시 정량적인 검증 대상이 된다.

VMD의 경쟁력이 ‘감각이 좋은 사람’에서 감각과 데이터를 함께 해석하는 사람으로 이동할 가능성이 커지는 이유다.

MD와 VMD, 분업에서 공동기획으로

그렇다고 VMD가 MD를 대신하는 것은 아니다.

두 직무의 책임은 여전히 다르다.

MD는 상품의 판매 가능성을 판단하고 소싱과 가격, 물량, 재고, 마진을 관리한다.

VMD는 그 상품을 고객이 발견하고 비교하고 구매하도록 공간과 시각적 환경을 설계한다.

다만 과거보다 두 직무가 만나는 지점이 크게 늘고 있다.

예를 들어 MD가 신상품 100개를 선정했다면 과거에는 VMD가 그 상품을 효과적으로 진열하는 것이 중요했다.

이제는 한 단계 더 나아간다.

어떤 상품을 입구에 배치해야 하는지, 어떤 상품끼리 함께 보여줘야 하는지, 어떤 상품이 사진이나 영상에서 브랜드를 대표할 수 있는지, 고객이 어떤 순서로 상품을 경험하도록 할 것인지까지 함께 결정해야 한다.

즉,

MD는 상품의 수익성을 설계하고 VMD는 공간의 수익성을 설계하는 관계

로 변화하고 있는 셈이다.

두 영역이 제대로 결합돼야 매출 전환이 완성된다.

‘예쁜 매장’의 한계, 팝업 과잉의 역설

VMD 시장 확대가 곧 모든 팝업과 체험형 매장의 성공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오히려 팝업 수가 폭발적으로 증가하면서 새로운 문제가 나타날 가능성도 커지고 있다.

2026년 상반기에만 2천 개가 넘는 팝업이 열렸다는 것은 소비자가 접하는 공간 경험 역시 급격히 많아졌다는 의미다.

비슷한 포토존과 굿즈, 대형 조형물, 한정판 이벤트가 반복되면 처음에는 신선했던 방식도 빠르게 평준화될 수 있다.

결국 ‘화려하게 꾸민 공간’ 자체는 더 이상 강력한 차별화가 아닐 수 있다.

앞으로 중요한 것은 공간이 상품과 브랜드의 이유를 얼마나 명확하게 전달하는가다.

공간에서 상품이 사라지고 인테리어만 기억된다면 좋은 VMD라고 평가하기 어렵다.

방문객은 많지만 구매 전환이 일어나지 않는 공간 역시 사업 관점에서는 성공이라고 보기 어렵다.

그래서 VMD의 미래는 미학보다 오히려 사업성과 가까워질 가능성이 높다.

직무의 확장, 새로운 요구 역량

앞으로 VMD에게 요구될 능력도 달라질 전망이다.

기본적인 공간 디자인과 색채, 조명, 집기, 그래픽에 대한 이해는 여전히 중요하다.

그러나 여기에 상권 분석, 고객 행동, 브랜드 전략, SNS 콘텐츠, 디지털 사이니지, 데이터 해석​이 추가될 가능성이 높다.

딜로이트는 물리적 공간과 디지털 시스템이 결합되는 ‘Connected Store’를 미래 매장의 중요한 운영 모델로 제시하고 있다.

매장을 개별 장비의 집합이 아니라 실시간 데이터를 만들어내는 하나의 운영체계로 바라보는 개념이다.

이 관점이 확산되면 VMD 역시 공간을 단순히 디자인하는 역할보다 고객 경험을 설계하고 그 결과를 데이터로 검증하는 역할에 가까워질 수 있다.

Next Insight 분석 | VMD의 진짜 변화, ‘디자인’에서 ‘전환율’로

VMD가 주목받는 이유를 단순히 ‘오프라인 매장이 다시 중요해졌기 때문’이라고 설명하면 절반만 맞는다.

더 근본적인 변화는 오프라인 매장이 존재해야 하는 이유 자체가 달라지고 있다는 점에 있다.

상품 검색과 가격 비교, 주문과 결제는 이미 온라인이 압도적으로 편리하다.

따라서 오프라인 공간은 다른 가치를 만들어야 한다.

사람을 오게 만들고, 머물게 하고, 상품을 발견하게 하고, 사진을 찍게 하고, 브랜드를 기억하게 하며, 결국 구매로 연결해야 한다.

이 모든 과정의 한가운데 공간이 있다.

그동안 유통업에서 상품의 경제성을 책임지는 사람이 MD였다면 앞으로는 공간의 경제성을 책임지는 사람의 중요성도 커질 수밖에 없다.

VMD의 부상은 바로 이 변화에서 출발한다.

2026년 상반기 팝업스토어가 전년보다 44.9% 증가하고, 성수에서는 팝업을 거쳐 플래그십으로 확장하는 모델이 자리 잡고 있으며, 대형 유통기업은 매장을 리테일미디어로 바꾸고 있다.

이 세 현상은 서로 다른 이야기가 아니다.

모두 오프라인 공간 자체가 하나의 상품이자 콘텐츠, 광고매체, 데이터 플랫폼으로 변화하고 있다는 신호​다.

그래서 앞으로의 VMD를 단순한 ‘진열 전문가’로 정의하는 것은 점점 어려워질 것이다.

좋은 VMD의 기준도 달라질 가능성이 크다.

얼마나 아름다운 공간을 만들었는가가 아니라, 그 공간이 얼마나 많은 고객을 멈추게 하고 브랜드를 기억하게 하고 실제 구매로 연결했는가.

VMD가 디자인 직무를 넘어 유통기업의 핵심 기획 직무로 이동하는 경계선은 바로 여기에 있다.

취재·작성: 김귤연 기자 | Next Insight News
nextinsight.news@gmail.com

참고자료

  • 산업통상부, 「2025년 연간 및 12월 주요 유통업체 매출동향」
  • 산업통상부, 「2025년 11월 주요 유통업체 매출동향」
  • 스위트스팟, 「2026 상반기 팝업스토어 트렌드 리포트」
  • 쿠시먼앤드웨이크필드 코리아, 「알던 동네, 다른 동네-성수편」
  • 쿠시먼앤드웨이크필드 코리아, 「왜 글로벌 브랜드는 성수에서 팝업 후 플래그십으로 확장할까」
  • CJ올리브영 채용, VMD 직무소개 및 채용공고
  • 딜로이트, 「2026 글로벌 리테일 산업 전망」
  • 딜로이트, 「The Connected Store」
  • 연합뉴스, 유통업계 리테일미디어네트워크(RMN) 관련 보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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