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사업보국·인재제일’에서 문화보국으로…이병철, 1965년 삼성문화재단 설립하고 문화·예술·교육을 국가의 정신적 자산으로 바라봐
이미경 “할아버지는 문화의 힘이 산업·경제 성장과 결합될 때 국가 경쟁력이 생긴다고 가르쳤다”…1995년 드림웍스 투자의 철학적 배경
봉준호의 창작력은 창작자의 것…CJ는 투자·배급·글로벌 네트워크와 아카데미 캠페인의 ‘도로’를 구축
‘기생충’의 오스카는 한 기업이나 한 개인의 작품이 아니다…감독·배우·스태프·기업·관객이 함께 만든 한국 문화산업의 결실
2020년 2월 미국 로스앤젤레스 돌비극장.
봉준호 감독의 영화 <기생충>이 제92회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작품상, 감독상, 각본상, 국제장편영화상 등 4개 부문을 석권했다.
비영어권 영화가 아카데미 작품상을 받은 것은 당시 92년 역사에서 처음이었다.
한국 영화가 세계 영화산업의 가장 상징적인 무대에 올라선 순간이었다.
그러나 <기생충>의 성공을 한 사람의 영웅담으로 설명하면 오히려 이 사건의 진짜 가치를 놓치게 된다.
봉준호 감독의 창작력,
배우들의 연기,
제작진의 기술,
바른손E&A의 제작,
CJ ENM의 투자와 배급,
미국 배급사 NEON의 현지 전략,
그리고 수십 년에 걸쳐 성장한 한국 영화산업 전체가 결합한 결과였기 때문이다.
그 과정에서 CJ그룹 이미경 부회장의 역할 역시 분명 존재했다.
하지만 이를
“이미경 부회장이 <기생충>의 오스카를 만들어냈다”
고 표현하는 것은 정확하지 않다.
아카데미 공식 기록상 작품상 수상 제작자는 곽신애와 봉준호였다.
이미경 부회장의 진짜 기여는 다른 곳에서 찾아야 한다.
봉준호와 한국 창작자들이 세계로 갈 수 있도록 투자·배급·콘텐츠 인프라와 글로벌 네트워크를 장기간 구축해온 문화산업 설계자.
이 표현이 그의 역할에 더 가깝다.
그리고 그 문화투자의 뿌리를 따라가다 보면 한 세대 앞의 기업가, CJ의 뿌리이기도 한 삼성 창업주 호암 이병철을 만나게 된다.
■ 이미경의 문화투자를 이해하려면 이병철부터 봐야 한다
호암 이병철은 흔히 삼성전자와 반도체 산업의 창업자로 기억된다.
그러나 그의 활동은 제조업과 무역에만 머물지 않았다.
호암재단 공식 기록에 따르면 이병철은 기업경영의 핵심 철학으로
사업보국(事業報國),
인재제일(人材第一),
합리추구(合理追求)
를 강조했다.
기업의 성장이 기업 자체의 이익만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국가와 사회의 발전으로 이어져야 한다는 생각이었다.
그가 문화와 교육에 투자한 것도 이런 시각과 연결된다.
1965년 이병철은 삼성문화재단을 설립했다.
호암재단은 그가 기업의 사회적 책임과 사명을 고민하면서 “우리의 정신적 자산을 풍족하게 하는 사업”을 추진했다고 기록하고 있다.
당시는 대한민국이 산업화의 초입에 있던 시기였다.
국민소득도 낮았고 기업 입장에서는 생산시설과 수출사업에 투자하는 것만으로도 할 일이 많던 시대였다.
그런 때 기업인이 문화재단을 만들었다는 것은 의미가 작지 않다.
■ 이병철은 왜 돈이 아닌 ‘문화’를 국가 자산으로 봤나
이병철의 생각을 단순히 예술품 수집 취미로만 보는 것은 부족하다.
호암재단 기록에 따르면 그는 삼성문화재단을 설립하기에 앞서 노벨재단과 록펠러재단 등 해외 재단의 기금구성과 운영방식을 조사했다.
즉 개인적인 수집이 아니라 기업이 장기간 사회의 문화·교육 기반에 기여할 수 있는 제도적 구조를 만들려고 했다는 것이다.
이 같은 철학은 이후 미술관과 언론, 교육으로 확장됐다.
1965년 중앙일보가 창간됐고, 방송과 문화사업에도 참여했다.
그리고 1982년에는 자신이 약 30년에 걸쳐 수집한 한국 미술품을 토대로 호암미술관을 열었다.
호암미술관은 설립 취지를 이렇게 설명한다.
한국 미술을 국민과 공유하고, 문화예술을 통해 미래의 창조적 가치를 발견하는 교육의 장이 되는 것이 목적이었다는 것이다.
여기에는 중요한 철학이 들어 있다.
경제가 나라의 몸을 만든다면 문화는 그 나라의 정신을 만든다는 생각이다.
■ ‘문화보국’이라는 말
최근 호암미술관은 이병철과 간송 전형필의 문화유산 보존 활동을 설명하면서 ‘문화보국’이라는 표현을 사용했다.
한국 문화유산을 수집·보존하고 국민과 공유함으로써 국가문화의 기반을 지킨다는 의미다.
이것은 이병철의 대표적인 경영철학인 ‘사업보국’과 묘하게 연결된다.
사업을 통해 나라에 기여한다는 생각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가,
문화와 예술 역시 국가의 경쟁력이자 후대에 남겨야 할 자산이라는 시각이다.
이 철학은 훗날 그의 손녀 이미경 부회장이 문화산업에 뛰어들 때 매우 다른 방식으로 다시 나타난다.
■ 이미경이 직접 밝힌 할아버지 이병철의 가르침
이 연결은 단순한 추론만이 아니다.
이미경 부회장 스스로 이병철에게서 받은 영향을 공개적으로 이야기했다.
2026년 CNN의 K컬처 다큐멘터리와 관련해 CJ ENM이 공개한 인터뷰에서 이미경은 어린 시절 할아버지 이병철에게 들은 말을 회상했다.
그 취지는 명확했다.
“문화의 힘이 산업적·경제적 성장과 결합할 때 한 국가가 진정한 경쟁우위를 갖게 된다.”
이미경은 이것이 할아버지가 어린 시절부터 자신들에게 강조했던 생각이라고 밝혔다.
이 한 문장은 CJ가 문화산업에 왜 오랫동안 투자했는지 이해하는 중요한 열쇠가 된다.
이병철 시대의 문화투자는
미술품,
문화재단,
언론,
교육과 같은 국가의 문화 기반을 만드는 형태였다.
이미경 세대에서는 그것이
영화,
음악,
방송,
공연,
K팝,
글로벌 콘텐츠 산업으로 확장됐다.
방식은 달라졌지만
문화가 국가의 경쟁력이라는 기본 인식은 이어졌다고 볼 수 있다.
■ 이미경은 어린 시절부터 ‘콘텐츠가 만들어지는 현장’을 봤다
이병철과 이미경의 관계에는 또 하나 흥미로운 대목이 있다.
이미경은 2013년 미국 WIRED와의 인터뷰에서 어린 시절 학교가 끝나면 할아버지가 운영하던 동양방송(TBC) 스튜디오에서 시간을 보내곤 했다고 회상했다.
방송 프로그램이 어떻게 제작되는지를 현장에서 직접 볼 수 있었다는 것이다.
이 경험을 단순한 어린 시절 추억으로만 볼 수도 있다.
그러나 이후 이미경이 영화와 방송, 음악을 하나의 콘텐츠산업으로 바라보게 된 경로를 생각하면 상당히 상징적이다.
할아버지 세대가 만든 방송 스튜디오에서 콘텐츠 제작을 보던 손녀가 수십 년 뒤 한국 최대 규모의 엔터테인먼트 사업을 세계로 확장하는 역할을 맡은 셈이다.
■ 이병철의 ‘인재제일’은 문화산업에서 더 중요해졌다
이병철의 세 가지 철학 가운데 문화산업과 가장 직접적으로 연결되는 것이 인재제일이다.
제조업에서도 사람은 중요하다.
하지만 문화산업에서는 사람이 사실상 전부다.
감독,
작가,
배우,
가수,
음악가,
프로듀서,
촬영감독,
편집자,
안무가,
미술감독.
콘텐츠에는 반도체처럼 동일한 제품을 반복 생산하는 공식이 없다.
결국 창작자의 아이디어가 자산이다.
이 점에서 이병철의
“기업은 사람이다”
라는 인재중심 경영철학은 문화산업에서 더욱 직접적인 의미를 갖게 된다. 그의 경영철학을 공식적으로 정리한 자료에서도 ‘인재제일’은 핵심 가치로 제시돼 있다.
이미경 부회장이 이후 강조한 것도 결국 같은 문제였다.
좋은 창작자가 계속해서 영화를 만들고 이야기를 만들 수 있도록 산업적 인프라를 구축해야 한다는 것이다.
■ 그러나 ‘철학을 물려받았다’와 ‘그대로 따라 했다’는 다르다
여기서 객관성을 위해 분명히 해야 할 부분도 있다.
CJ의 현대 콘텐츠 사업을 모두 이병철이 설계했다고 볼 수는 없다.
이병철은 1987년 세상을 떠났다.
CJ가 드림웍스에 투자한 것은 1995년이다.
<기생충>이 아카데미 작품상을 받은 것은 2020년이다.
K팝과 OTT, KCON, 글로벌 영화시장은 이병철 시대에는 존재하지 않았거나 지금과 전혀 다른 산업이었다.
따라서
“이병철 회장이 K콘텐츠 세계화를 계획했고 이미경이 실행했다”
고 쓰는 것은 역사적 과장이다.
더 정확한 표현은 이렇다.
이병철이 문화와 인재를 국가의 자산으로 보는 철학적 토대를 남겼고, 이미경은 그 가치관을 자신이 살아온 시대의 엔터테인먼트 산업에 맞게 독자적으로 발전시켰다.
이것이 세대 간 연결을 가장 객관적으로 설명하는 방식이다.
■ 1995년 드림웍스 투자…철학이 산업으로 바뀐 순간
이미경 문화사업의 결정적인 전환점은 1995년 드림웍스 투자였다.
스티븐 스필버그,
제프리 카젠버그,
데이비드 게핀이 세운 할리우드 스튜디오 드림웍스에 CJ가 초기 투자자로 참여했다.
CJ 측 자료에 따르면 약 3억 달러 규모의 투자를 통해 지분과 아시아 배급권 등을 확보했다.
지금 보면 세계 콘텐츠산업으로 진출하기 위한 당연한 투자처럼 보일 수 있다.
그러나 1995년의 한국은 지금의 K콘텐츠 시대와 전혀 달랐다.
한국 영화가 아카데미 작품상을 받을 것이라고 예상하기 어려웠고,
한국 가수가 빌보드 정상에 오르는 모습도 상상하기 힘들었다.
이미경은 이 투자 경험에서 중요한 사실을 배웠다고 훗날 말했다.
엔터테인먼트 산업은 무형의 창의적 자산을 실제 산업적 가치로 바꾸는 사업이며, 그러기 위해서는 창작자가 지속적으로 활동할 수 있는 인프라를 만들어야 한다는 것이다.
바로 이 지점에서 이병철의 철학과 이미경의 전략이 만난다.
■ 할아버지는 문화의 ‘가치’를 봤고 손녀는 문화의 ‘산업’을 봤다
두 세대의 차이를 이렇게 정리할 수 있다.
이병철
“경제성장만으로 국가는 완성되지 않는다. 문화·교육·예술이라는 정신적 자산이 필요하다.”
이미경
“문화는 정신적 자산인 동시에 세계시장에 수출할 수 있는 산업이 될 수 있다.”
이 차이가 중요하다.
이병철은 문화재단과 미술관을 만들었다.
이미경은 영화투자·배급 시스템과 멀티플렉스, 음악채널, 제작스튜디오, 글로벌 공연과 콘텐츠 플랫폼을 확대했다.
한쪽이 문화의 보존과 사회적 기반을 만들었다면,
다른 한쪽은 문화가 생산되고 유통되고 수익을 만들어 다시 새로운 창작에 투자되는 산업 생태계로 발전하도록 했다.
■ CGV는 극장을 만든 것이 아니라 ‘관객시장’을 만들었다
CJ의 문화사업을 볼 때 영화제작만 봐서는 부족하다.
콘텐츠 산업은 영화를 만드는 사람만 있다고 성장하지 않는다.
관객이 영화를 접할 공간도 필요하다.
CJ는 멀티플렉스 극장 사업을 확대하며 한국의 영화관람 환경을 바꾸는 데 중요한 역할을 했다.
동시에 영화 투자와 배급을 함께 확대했다. CJ는 이후 방송·음악·공연 등으로 사업을 넓히며 콘텐츠가 생산되고 소비되는 여러 단계를 하나의 산업 생태계로 연결했다.
이 과정에는 비판도 존재한다.
대기업이 투자·배급·극장까지 영향력을 확대하면 스크린 집중과 중소 제작사의 협상력 문제 등이 생길 수 있다.
따라서 CJ의 산업적 기여와 시장지배력에 대한 비판은 동시에 평가돼야 한다.
공을 인정한다고 모든 사업방식이 비판에서 자유로워지는 것은 아니다.
■ 그리고 그 길 위에서 봉준호와 박찬욱이 성장했다
한국 영화의 세계적 성공은 기업이 감독을 만들어낸 결과가 아니다.
박찬욱의 영화세계는 박찬욱의 것이다.
봉준호의 영화세계 역시 봉준호 자신의 창작 결과다.
기업이 감독의 재능을 대신할 수는 없다.
그러나 창작자가 계속 작품을 만들 수 있으려면 제작비와 배급망이 필요하다.
CJ는 <공동경비구역 JSA>, <올드보이>, <살인의 추억>, <설국열차>, <기생충> 등 한국 영화산업의 중요한 작품들에 투자·배급 또는 사업 파트너로 참여하며 장기간 콘텐츠 포트폴리오를 구축해왔다. CJ ENM 역시 자사의 문화사업 역사를 설명하면서 박찬욱과 봉준호 등 창작자에 대한 장기적 지원을 강조하고 있다.
여기에서 기업의 가장 바람직한 역할이 드러난다.
창작자를 만드는 것이 아니라 창작자가 작품을 만들 기회를 만드는 것.
■ ‘기생충’의 창작자는 봉준호와 제작진이다

이 점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다.
<기생충>의 성공을 이미경이나 CJ 한 곳의 성과로 설명하면 영화 제작의 본질을 왜곡한다.
봉준호 감독이 이야기를 만들었고,
배우들이 인물을 만들었다.
촬영과 편집,
미술,
음악,
조명,
의상,
음향을 담당한 수많은 영화인이 작품을 완성했다.
바른손E&A가 제작을 담당했고,
CJ ENM이 투자·국내 배급을 맡았으며,
미국에서는 NEON이 배급과 현지 캠페인에서 중요한 역할을 했다.
따라서 이미경과 CJ의 공은 작품의 예술적 소유권이 아니라 산업적 지원과 세계시장 연결에서 찾아야 한다.
■ 이미경이 오스카를 만든 것이 아니다
바로 이 지점에서 기사 전체의 핵심을 다시 확인할 수 있다.
이미경 부회장이 <기생충>에게 아카데미상을 ‘준’ 것이 아니다.
CJ의 돈만으로 아카데미상을 산 것도 아니다.
그런 식의 설명은 영화산업의 실제 구조와 맞지 않는다.
<기생충>은 먼저 칸국제영화제 황금종려상을 받으며 세계 영화계에서 작품성을 인정받았다.
그리고 북미에서는 영화 자체의 평가와 함께 수개월 동안 시사회·언론 인터뷰·업계 행사와 각종 시상식 캠페인이 이어졌다.
그 과정에서 CJ와 제작사, 미국 배급사가 작품이 더 많은 업계 관계자에게 도달하도록 지원했다.
따라서 이미경 부회장의 역할은
“오스카를 만들어낸 사람”
이 아니라
“한국 창작자의 작품이 오스카 경쟁까지 갈 수 있는 산업적 도로를 장기간 만들어온 사람”
으로 보는 것이 훨씬 정확하다.
■ 이병철의 ‘사업보국’은 이미경 시대에 ‘문화산업보국’으로 확장됐나
여기에서는 ‘계승’이라는 단어를 조심스럽게 사용할 필요가 있다.
이병철의 사업보국은 기업 활동을 통해 국가경제와 사회에 기여한다는 철학이었다.
그 철학이 이미경 시대에는 새로운 형태로 읽힐 수 있다.
반도체나 자동차만 수출하는 것이 아니라,
영화와 음악,
드라마,
공연,
스토리와 이미지를 세계에 수출하는 것이다.
문화 콘텐츠는 공장을 세우지 않아도 세계인의 마음속에 국가 이미지를 만든다.
이런 의미에서 이미경의 콘텐츠 전략은 이병철의 사업보국이 21세기 문화산업이라는 새로운 영역에서 확장된 사례로 해석할 여지가 있다.
다만 이것은 역사적으로 확인된 직접 지시라기보다 두 세대의 발언과 사업행보를 연결한 해석이다.
■ 문화의 힘은 공장 하나보다 오래갈 수도 있다
문화산업의 특별함은 제품 판매가 끝난 뒤에도 영향력이 남는다는 데 있다.
자동차는 팔고 나면 제품이 남는다.
반도체는 전자제품 안으로 들어간다.
하지만 영화와 음악은 사람의 기억에 들어간다.
<기생충>을 본 세계인은 한국의 반지하라는 공간을 알게 됐다.
<오징어게임>을 본 사람들은 한국의 게임과 사회를 이야기했다.
K팝을 듣는 사람들은 한국어를 배우기 시작했다.
문화는 수출액을 넘어 한 국가에 대한 감정과 이미지를 만든다.
이미경이 오래전부터 이야기해온 글로벌 문화 전략도 결국 이 부분을 겨냥한다.
그는 한국 문화 자체를 일방적으로 홍보하는 것보다 진정성 있는 이야기를 통해 세계 사람들이 연결되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 문화적 자부심은 기업 한 곳의 성공에서 나오지 않는다
그러나 한국 문화에 대한 자부심을 CJ라는 기업 하나에 집중시키는 것도 옳지 않다.
한국 영화의 기반을 만든 수많은 사람들이 있었다.
임권택,
이창동,
박찬욱,
봉준호,
그리고 수많은 독립영화 감독과 제작자들이 있었다.
송강호,
최민식,
전도연,
윤여정,
이병헌 등 배우들이 한국 연기의 수준을 세계에 알렸다.
촬영,
미술,
음향,
편집,
의상,
VFX 분야의 수많은 이름 없는 스태프들이 있었다.
그리고 좋은 영화와 그렇지 않은 영화에 냉정하게 반응한 한국 관객도 있었다.
기업은 그 생태계의 중요한 구성원이지 문화 전체의 주인은 아니다.
■ 이병철 철학에서 지금도 가장 중요한 것은 ‘사람’
한국 문화산업의 다음 30년을 생각한다면 이병철의 세 가지 경영철학 중 오히려 인재제일이 가장 중요한 화두가 될 수 있다.
AI와 OTT,
글로벌 플랫폼,
가상제작,
숏폼 등 기술은 계속 변한다.
하지만 이야기를 만드는 것은 결국 사람이다.
다음 봉준호가 누구인지 기업이 미리 알 수는 없다.
다음 박찬욱,
다음 BTS,
다음 <오징어게임> 역시 예측할 수 없다.
따라서 산업이 해야 할 일은 한 명의 천재를 골라내는 것이 아니다.
수백 명의 창작자가 실패하고 다시 도전할 수 있도록 기회를 만드는 것이다.
이것이 문화산업에서의 인재제일이다.
■ 다음 시대의 CJ에 필요한 것도 ‘흥행제일’이 아니라 ‘인재제일’
기업이 단기 흥행만을 추구하면 비슷한 콘텐츠가 반복된다.
한 장르가 성공하면 유사 작품이 쏟아지고,
한 아이돌이 성공하면 비슷한 그룹이 만들어지고,
한 드라마가 성공하면 같은 문법이 반복된다.
그러나 문화산업은 성공 공식을 복제할수록 쇠퇴할 가능성이 있다.
따라서 이병철의 인재제일 철학을 현대 문화산업에 적용한다면 답은 오히려 분명하다.
감독을 믿고,
작가에게 시간을 주고,
신인 배우를 발굴하고,
실패한 창작자에게 다시 기회를 주는 것.
기업이 창작자보다 작품을 더 잘 안다고 생각하지 않는 것.
이런 환경이 있어야 한국 문화의 다음 세대가 나온다.
■ 기업은 ‘돈을 대는 사람’에서 ‘생태계를 지키는 사람’으로
이미경이 드림웍스 투자에서 배웠다고 밝힌 것도 바로 ‘인프라’였다.
엔터테인먼트 산업은 단순히 영화 한 편에 투자해 흥행 수익을 얻는 사업이 아니라,
창작자가 계속해서 콘텐츠를 만들 수 있는 구조를 만드는 산업이라는 것이다.
이것은 매우 중요한 관점이다.
문화산업의 선진국과 그렇지 않은 나라의 차이는 천재가 있느냐 없느냐가 아니다.
천재가 실패해도 다시 영화를 만들 수 있느냐,
신인 작가가 첫 작품을 시장에 내놓을 기회가 있느냐,
배우가 작품을 통해 성장할 수 있느냐,
독립제작사가 대기업과 공정하게 협상할 수 있느냐에서 갈린다.
■ 정부 역시 이병철의 문화철학에서 배울 것이 있다
문화 발전을 정부가 직접 작품을 지휘하는 방식으로 추진하면 오히려 창작을 위축시킬 수 있다.
정부의 역할은 창작 내용이 아니라 기반에 있어야 한다.
저작권 보호,
문화예술 교육,
독립영화 지원,
공정계약,
해외 진출 지원,
공연·제작 인프라,
문화유산 보호.
이병철이 문화재단과 미술관이라는 ‘그릇’을 만들었던 것처럼 정부 역시 창작자가 자유롭게 활동할 수 있는 그릇을 만드는 것이 중요하다.
■ 이병철에서 이미경까지…공통된 질문은 하나였다
두 사람은 다른 시대를 살았다.
이병철은 산업화 시대의 기업가였다.
이미경은 글로벌 콘텐츠 시대의 경영자다.
사업방식도 완전히 다르다.
그러나 두 사람의 행보를 관통하는 질문은 비슷하다.
“경제가 성장한 다음, 그 나라를 진짜 강하게 만드는 것은 무엇인가.”
이병철은 그 답 가운데 하나를 문화·예술·교육에서 찾았다.
1965년 문화재단을 만들고,
한국 미술을 수집·보존해 미술관을 세웠다.
이미경은 한 세대 뒤 그 답을 콘텐츠 산업에서 찾았다.
1995년 드림웍스에 투자했고,
영화와 음악,
방송,
공연,
글로벌 플랫폼으로 영역을 넓혔다.
■ 그리고 그 끝에서 ‘기생충’이 세계를 만났다
그 긴 과정의 상징적인 장면이 <기생충>이었다.
하지만 다시 한 번 강조할 필요가 있다.
이병철이 <기생충>을 만든 것도 아니다.
이미경이 <기생충>을 만든 것도 아니다.
영화를 만든 사람은 봉준호와 제작진이다.
배우가 연기했고,
스태프가 촬영하고 편집하고 공간과 소리를 만들었다.
CJ의 역할은 영화가 제작되고 배급되고 세계시장으로 나갈 수 있도록 산업적 기반을 제공하는 것이었다.
그 역할들을 정확히 구분할수록 오히려 각자의 공은 더 분명하게 보인다.
■ ‘기생충’의 성공을 하나의 공식으로 표현한다면
<기생충>의 아카데미 성공은 다음과 같은 긴 연결고리의 결과였다.
한국 영화인들이 수십 년간 쌓은 창작 역량
봉준호 감독의 독창적인 이야기
송강호를 비롯한 배우들의 연기
제작진의 기술
바른손E&A의 제작
CJ ENM의 투자·배급
NEON의 미국 현지 전략
칸 황금종려상에서 시작된 국제적 평가
아카데미 캠페인
한국 관객의 높은 기준
이다.
여기에 더 멀리 역사를 거슬러 올라가면
“문화 역시 국가 경쟁력”
이라고 생각했던 한국 기업가들의 장기적인 문화투자 철학도 하나의 배경으로 자리하고 있었다.
■ 결론 ― 이병철이 심은 것은 ‘문화도 나라의 힘’이라는 생각이었다
이병철 회장이 오늘날의 K팝과 영화산업을 예측했다고 말하는 것은 과장이다.
그가 봉준호의 오스카를 계획했다고 말할 수도 없다.
그러나 분명한 사실이 있다.
경제개발만으로도 숨가쁘던 1965년 그는 문화재단을 세웠다.
수십 년 동안 한국 미술품을 수집하고 보존했고,
1982년에는 그것을 국민과 나누기 위한 미술관을 열었다.
그리고 손녀 이미경은 훗날 자신이 어린 시절 할아버지에게서 들었던 가르침을 이렇게 기억했다.
산업과 경제의 성장에 문화의 힘이 더해져야 한 나라가 진정한 경쟁력을 가진다는 생각.
이미경은 그 생각을 자신의 시대에 맞게 바꿨다.
문화재를 수집하고 보존하는 시대에서,
영화와 음악과 이야기를 세계시장으로 보내는 시대로 옮겼다.
1995년 드림웍스 투자에서 시작해 영화 투자·배급,
극장,
방송,
음악,
공연,
글로벌 콘텐츠 네트워크를 확장했다.
그 과정에서 한국 창작자들이 세계를 만날 수 있는 산업적 통로가 만들어졌다.
그러므로 이미경 부회장을 평가할 때 가장 적절한 문장은 여전히 이것이다.
“이미경이 만든 것은 오스카가 아니라, 한국의 창작자가 오스카까지 갈 수 있는 길이었다.”
그리고 그보다 한 세대 앞에서 이병철이 남긴 것은 그 길을 만들 수 있었던 하나의 생각이었다.
“경제력만으로 강한 나라가 완성되는 것이 아니다. 문화와 사람이 함께 성장해야 한다.”
이병철 시대에는 그것이 문화재단과 미술관으로 나타났다.
이미경 시대에는 영화와 음악, K콘텐츠 산업으로 나타났다.
그리고 봉준호와 수많은 한국 창작자들은 그 산업적 도로 위에서 자신들의 작품으로 세계와 만났다.
문화의 역사는 어느 한 사람의 것이 아니다.
기업가가 토대를 만들고,
창작자가 작품을 만들고,
배우와 스태프가 그것을 완성하며,
관객이 선택하고,
다음 세대가 다시 새로운 이야기를 만든다.
그 선순환이 계속될 때 문화는 유행을 넘어 산업이 되고,
산업을 넘어 한 나라의 힘이 된다.
한국 문화의 진짜 자부심은 ‘기생충이 오스카를 받았다’는 한 번의 사건에만 있지 않다.
더 큰 자부심은
문화에 투자할 가치가 있다고 믿은 세대,
그 산업을 실제로 구축한 세대,
그리고 세계가 공감할 작품을 만든 창작자들이 수십 년에 걸쳐 하나의 생태계를 완성했다는 데 있다.
그것이 이병철에서 이미경, 그리고 봉준호로 이어지는 이야기를 가장 사실적이고 가치 있게 바라보는 방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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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extInsightNews 김귤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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