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976년 창립된 한국구상조각회 회원 72인 참여…김리원 작가 ‘굿다이노’·‘몬드리안 페르소나’로 인간의 내면과 정체성 탐구

조각에서 ‘형상’은 어디까지 구체적이어야 할까.
인체를 사실적으로 재현해야만 구상조각이라고 부를 수 있는 시대는 이미 지났다. 인간과 동물, 자연에서 출발하더라도 형태를 단순화하거나 왜곡하고, 재료와 색채를 결합해 작가의 생각을 전달하는 것 역시 오늘날 구상조각의 중요한 흐름이다.
한국구상조각회 회원 72명이 참여하는 기획초대전 **「형상의 변주」**는 바로 이 질문에서 출발한다.
전시는 2026년 8월 24일부터 9월 4일까지 YK갤러리에서 열린다. 24일 오후 4시 개막했으며, 서로 다른 세대와 작업방식을 가진 72명의 작가가 인체·동물·자연·일상의 풍경부터 기하학적 형태와 추상적 이미지에 이르기까지 각자가 해석한 ‘형상’을 선보인다. 금속·석재·목재·합성재료 등 재료 역시 다양하다.
50년 이어온 한국구상조각회…‘닮게 만드는 조각’에서 ‘해석하는 조각’으로

한국구상조각회는 1976년 창립된 조각가 단체다. 경기문화예술아카이브에도 설립연도가 1976년으로 기록돼 있으며, 이후 정기전과 야외조각전, 기획전 등을 이어왔다.
2025년에도 YK갤러리에서 기획전 「GROUND」를 개최하는 등 여러 세대의 작가가 구상조각을 매개로 지속적인 전시 활동을 이어왔다.
이번 전시에서 눈여겨볼 부분은 72명이라는 숫자 자체보다 72명의 작가가 ‘형상’을 서로 다르게 정의한다는 데 있다.
과거 구상조각의 중심이 인물이나 동물의 모습을 정확하게 재현하는 데 있었다면, 현대의 구상조각에서는 눈에 보이는 현실이 오히려 생각을 표현하기 위한 출발점으로 사용된다.
인체는 인간의 고독이나 관계를 표현하는 기호가 되고, 동물은 생명과 욕망을 상징하며, 기하학적 구조와 색채 역시 인간의 심리와 사회적 관계를 표현하는 수단으로 확장된다.
그래서 이번 전시의 제목인 ‘형상의 변주’는 단순한 작품 모음 이상의 의미를 갖는다.
같은 ‘형상’이라는 출발점이 작가에 따라 얼마나 서로 다른 조형언어로 변할 수 있는지를 한 공간에서 비교할 수 있기 때문이다.
김리원의 ‘굿다이노’…인체를 닮았지만 특정한 사람은 아니다

이번 전시에 참여한 김리원 작가는 한국구상조각회 집행부에서도 활동하고 있다. 최근 한국구상조각회 임원·회원 기획전에도 참여하며 조각을 중심으로 활동 영역을 넓혀왔다.
김 작가가 이번 전시에 선보인 **〈굿다이노〉**는 인체 형상을 출발점으로 하지만 특정 인물을 재현하는 작업과는 거리가 있다.
고개를 숙인 듯한 인체, 절제된 곡선, 구체적인 표정이 지워진 얼굴은 오히려 관람자가 작품 안에 자신의 감정을 투영하도록 만든다.
얼굴을 정교하게 묘사하지 않았기 때문에 작품 속 인물은 누군가 한 사람이 아니라 삶의 무게를 안고 자신을 돌아보는 익명의 인간으로 확장된다.
차가운 청회색의 표면과 부드럽게 이어지는 신체의 곡선 역시 대비를 이룬다.
재료가 전달하는 냉정함과 인체가 보여주는 유기적인 움직임 사이에서 작품은 고립과 성찰, 그리고 다시 움직이려는 생명성을 동시에 읽게 한다.
최근 관련 전시 보도에서도 김리원의 작업은 인간의 내면과 회복, 희망을 반복적으로 탐색하는 조형적 흐름으로 소개돼 왔다.
‘몬드리안 페르소나’…질서정연한 화면 위에 튀어나온 또 하나의 얼굴

또 다른 작품 **〈몬드리안 페르소나〉**는 접근법이 전혀 다르다.
작품의 배경에는 직선과 원색을 이용한 몬드리안적 화면 구성이 자리한다.
그러나 평면 위에는 검은 가면 형태가 돌출돼 있다.
여기서 흥미로운 것은 질서를 상징하는 화면과 정체성을 상징하는 가면이 하나의 작품 안에서 충돌한다는 점이다.
기하학적 화면은 사회가 만들어놓은 규칙과 구조를 떠올리게 하고, 그 위로 튀어나온 페르소나는 그 질서 속에서 살아가는 개인의 또 다른 얼굴처럼 읽힌다.
‘페르소나(Persona)’는 본래 가면을 뜻하는 말이지만 현대적으로는 타인에게 보여주는 사회적 자아라는 의미로도 사용된다.
작품 속 가면의 눈은 비어 있다.
그 빈 공간은 밖을 바라보는 창처럼 보이기도 하고, 반대로 자신의 안쪽을 들여다보는 통로처럼 보이기도 한다.
결국 작품은 우리가 사회 속에서 보여주는 모습과 실제 내면의 모습은 얼마나 같은가라는 질문으로 이어진다.
관련 보도에서도 이 작품은 질서와 혼돈, 사회적 자아와 내면의 자아가 공존하는 인간의 정체성을 탐구하는 작업으로 소개됐다.
서로 다른 두 작품이 보여주는 공통점…‘보이는 형상’보다 그 안의 인간
〈굿다이노〉와 〈몬드리안 페르소나〉는 외관만 보면 상당히 다르다.
하나는 인체의 곡선을 중심으로 한 조각이고, 다른 하나는 회화적 화면과 입체적인 가면을 결합한다.
그러나 두 작품이 향하는 곳은 비슷하다.
외부로 드러나는 인간의 모습과 그 안에 존재하는 내면 사이의 거리다.
〈굿다이노〉가 고독과 성찰이라는 개인 내부의 문제를 인체를 통해 표현한다면, 〈몬드리안 페르소나〉는 사회 속에서 만들어지는 정체성과 개인의 내면을 가면이라는 장치로 탐색한다.
이 때문에 김리원의 작품 역시 이번 전시 제목인 ‘형상의 변주’를 설명하는 하나의 사례가 된다.
형태는 달라도 질문은 인간에게 돌아온다.
김리원 작업의 또 다른 특징…조각이 미술관 밖으로 나간다
김리원의 최근 활동에서 눈에 띄는 것은 전통적인 갤러리 전시에만 머물지 않는다는 점이다.
김 작가는 과거 아드만 애니메이션의 ‘월리스 & 그로밋’ 아트 프로젝트 한국 참여 작가로 서울미술관 전시에 참여한 이력이 확인된다.
2026년에는 한국앤컴퍼니그룹 창립 85주년 특별전에도 참여했다.
당시 출품작 〈宇宙(우주)를 향해〉는 한국타이어 제품을 재활용해 제작한 원형 오브제로, 기업의 지속가능성과 미래 모빌리티라는 주제를 조형언어로 다시 해석했다. 이 내용은 한국앤컴퍼니그룹 공식 발표에서도 확인된다.
이러한 활동은 한 작가 개인의 경력보다 오늘날 조각이 어디까지 확장되고 있는가라는 측면에서 더 흥미롭다.
현대 조각은 더 이상 돌이나 청동으로 하나의 형상을 만드는 작업에만 머물지 않는다.
캐릭터, 브랜드, 산업 소재, 재활용 재료, 디지털 매체까지 조각의 재료와 전시장으로 들어오고 있다.
중요한 것은 협업 그 자체가 아니라 상업적·산업적 소재를 작가 자신의 조형언어로 다시 해석할 수 있느냐다.
72명의 작품을 한꺼번에 보는 이유…‘잘 만든 작품’을 고르는 전시가 아니다

72명의 작품이 한 공간에 모이면 관람자는 자연스럽게 작품을 비교하게 된다.
그러나 「형상의 변주」를 단순히 ‘어느 작품이 더 뛰어난가’를 고르는 전시로 보는 것은 아쉽다.
오히려 관람의 핵심은 하나의 단어가 얼마나 다양한 결과를 만들어내는지 비교하는 것이다.

같은 인체라도 어떤 작가는 사실적인 근육과 자세에 집중하고, 다른 작가는 신체를 몇 개의 곡선으로 단순화할 수 있다.
같은 동물도 생물학적 모습을 재현할 수도 있고 인간사회에 대한 은유로 사용할 수도 있다.
재료 역시 표현을 바꾼다.
금속은 단단함과 긴장을 만들고, 나무는 시간과 온기를 전달하며, 석재는 무게와 영속성을 강조한다. 합성재료는 색채와 형태에서 더 높은 자유도를 제공한다.
그래서 조각에서는 ‘무엇을 만들었는가’ 못지않게 ‘왜 이 형태와 재료를 선택했는가’가 중요하다.
세대가 다른 작가들이 한 공간에 있다는 것도 의미가 있다

이번 전시에는 오랜 기간 활동해온 중견·원로 조각가와 상대적으로 젊은 세대 작가가 함께 참여한다.
한국구상조각회가 1976년 창립 이후 여러 세대의 회원으로 활동을 이어왔다는 점에서도 이러한 세대 혼합은 이 단체의 특징 가운데 하나다.
미술사에서 전통은 같은 방식을 반복하는 것을 의미하지 않는다.
다음 세대가 기존의 방식을 받아들이고, 일부를 버리고, 새로운 재료와 표현방법을 더하면서 변화할 때 전통은 이어진다.
이번 전시의 ‘변주’라는 표현이 단순히 작품의 형태에만 적용되지 않는 이유다.
한국 구상조각 자체가 세대를 거치면서 어떻게 변주되고 있는지를 보여주는 전시로도 읽을 수 있다.
관람할 때 세 가지만 보면 전시가 달라진다

조각 전시는 어렵다고 느끼는 관람객도 많다.
작가의 의도를 모두 이해해야 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번 전시는 오히려 간단한 기준으로 보면 재미있다.
첫째는 형태다.
실제 사물과 얼마나 닮았는지보다 어떤 부분을 강조하고 어떤 부분을 지웠는지를 살펴보면 된다.
둘째는 재료다.
왜 이 작품은 금속이어야 했는지, 왜 돌이나 목재가 사용됐는지를 생각하면 형태와 재료의 관계가 보인다.
셋째는 감정이다.
작품을 보고 편안함·불안·유머·고독 가운데 무엇을 먼저 느꼈는지 살펴보면 작가가 형태를 어떻게 사용했는지 이해하기 쉬워진다.
미술 감상에 반드시 하나의 정답이 있어야 하는 것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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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형상의 변주」가 흥미로운 이유는 구상과 추상 사이에 선을 긋기보다 그 경계가 얼마나 넓어졌는지를 보여준다는 점에 있다.
72명의 작가가 같은 ‘형상’을 바라보지만 결과는 서로 다르다.
인체는 사람이기도 하고 고독이기도 하며, 가면은 물체이면서 동시에 정체성을 의미한다.
돌·금속·나무라는 물질은 단순한 재료에서 생각을 전달하는 언어로 바뀐다.
김리원의 〈굿다이노〉와 〈몬드리안 페르소나〉 역시 그 흐름 안에 있다.
하나는 얼굴을 지워 인간을 보편적인 존재로 만들고, 다른 하나는 가면을 앞으로 돌출시켜 우리가 보여주는 얼굴과 내면 사이의 거리를 묻는다.
결국 현대의 구상조각에서 중요한 것은 얼마나 실제와 똑같이 만들었느냐가 아니다.
보이는 세계에서 무엇을 선택하고, 그것을 어떤 형태로 변형해 다시 우리에게 돌려주는가가 더 중요해졌다.
1976년 창립된 한국구상조각회가 50년 가까운 시간이 흐른 지금에도 ‘형상’을 다시 질문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을 것이다.
전통을 지킨다는 것은 형태를 고정하는 일이 아니라, 시대가 달라질 때마다 같은 질문을 새로운 조형언어로 다시 던지는 일이기 때문이다.
전시 정보
전시명: 한국구상조각회 기획초대전 「형상의 변주」
기간: 2026년 8월 24일~9월 4일
장소: YK갤러리
참여: 한국구상조각회 회원 72인
관람시간: 오전 10시~오후 7시
관람료: 무료
휴관: 전시기간 중 별도 휴관 없음
취재·작성: 김귤연 기자 | Next Insight News
nextinsight.news@gmail.com
참고자료
- YK갤러리·한국구상조각회 「형상의 변주」 전시자료
- 경기문화예술아카이브, 한국구상조각회 설립·활동 자료
- 한국앤컴퍼니그룹, 창립 85주년 특별전 공식자료
- 한국구상조각회·김리원 작가 관련 전시자료
Next Insight 분석을 정리해 보내드립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