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홈플러스 9천명 떠난 뒤…84%가 여성, 66%가 50·60대였다」

1년 4개월 사이 퇴직자 9천명 넘어…실업급여 수급자 5,861명·417억원

재취업률 19.9%에 그쳐…기업 회생 뒤 남은 것은 ‘중장년 여성의 생애 직업전환’

19년 넘게 한 대형마트에서 일한 노동자가 어느 날 갑자기 요양보호사 자격증 공부를 시작했다.

정년까지 같은 회사에서 일할 것이라 믿었지만 매장이 문을 닫으면서 일자리도 함께 사라졌고, 뒤늦게 장애인활동지원사 교육까지 받아두며 새로운 생계를 준비하게 됐다. 퇴직금은 제때 받지 못했고, 실업급여와 저축으로 생활을 이어가야 했다.

홈플러스 회생 사태가 남긴 것은 점포 폐점 숫자나 채권 변제 일정만이 아니다.

지난해 3월 회생절차 신청 이후 올해 7월 말까지 회사를 떠난 직원은 9천명을 넘은 것으로 추산된다. 홈플러스익스프레스 매각으로 소속이 바뀐 약 2천명과 일부 정년퇴직자를 제외하더라도 실질적인 퇴직 규모는 6천명대에 이른다.

그리고 그 숫자 안을 들여다보면 이번 구조조정의 비용이 누구에게 집중됐는지가 보인다.

실업급여를 받은 홈플러스 퇴직자의 84%는 여성, 66%는 50·60대였다.

9천명이 떠났지만 문제는 ‘누가 떠났느냐’다

기업 구조조정 기사에서 가장 먼저 등장하는 숫자는 대개 몇 명이 퇴직했느냐다.

그러나 홈플러스의 경우에는 그다음 숫자가 더 중요하다.

고용노동부가 국회에 제출한 자료에 따르면 지난달 4일 기준 홈플러스 퇴직자 가운데 실업급여를 받은 사람은 5,861명이었고, 지급액은 417억원에 달했다.

이 가운데 여성은 전체의 84%, 50·60대는 66%였다.

대형마트 현장에서 계산대와 고객응대, 상품진열, 식품매장 등을 오랫동안 담당해온 노동자들의 구성과 거의 겹친다.

즉 홈플러스 사태는 단순한 유통기업의 인력감축이 아니라 중장년 여성 노동자 집단의 대규모 노동시장 이탈이라는 성격을 동시에 갖고 있다.

젊은 노동자라면 같은 업종이나 비슷한 직무로 옮기는 방식의 재취업을 기대할 수 있지만, 50대 후반이나 60대에 장기간 근무하던 직장을 떠난 노동자는 상황이 다르다.

새 일자리를 찾는 문제가 아니라 사실상 남은 노동생애 전체를 다시 설계해야 하기 때문이다.

재취업률 19.9%…전체 평균보다 낮았다

실제 재취업 지표에서도 이런 어려움이 나타난다.

실업급여를 받은 홈플러스 퇴직자 가운데 수급 기간 중 재취업에 성공한 사람은 올해 7월 말 기준 241명이었고, 고용노동부 기준 재취업률은 19.9%였다.

최근 3년 전체 실업급여 수급자의 평균 재취업률이 약 30%였다는 점을 고려하면 10%포인트가량 낮은 수준이다.

다만 이 숫자를 곧바로 “홈플러스 퇴직자는 취업이 거의 불가능하다”고 해석하는 것도 신중해야 한다.

실업급여 수급 기간이 끝난 뒤 취업한 사람은 해당 통계에 포함되지 않으며, 별도의 취업지원 서비스를 이용한 사람들의 취업률은 더 높게 나타났기 때문이다.

취업지원 서비스를 신청한 846명 가운데 취업한 비율은 40%를 넘었다.

이 차이는 중요한 의미를 남긴다.

문제가 단순히 나이와 성별에만 있는 것이 아니라 직업훈련·상담·재취업 프로그램과 실제로 연결되느냐에 따라 결과가 달라질 수 있다는 것이다.

19년 경력이 ‘요양보호사 공부’로 이어진 이유

대형마트에서 10년, 20년씩 일한 경력은 짧지 않다.

그러나 이 경력이 다른 산업에서 그대로 인정되는지는 별개의 문제다.

유통업 현장에서 축적한 고객응대, 상품관리, 매장운영 경험은 실제 노동역량이지만, 퇴직 후 마주하는 구인시장은 이를 하나의 전문경력으로 평가하지 않는 경우가 많다.

그래서 장기근속 노동자가 요양보호사, 장애인활동지원사, 돌봄·서비스직 등 새로운 직종의 자격증을 다시 준비하게 된다.

이는 단순한 이직과는 성격이 다르다.

한 직장에서 20년 가까이 쌓은 경력의 연속성이 끊기고, 노동시장에 사실상 다시 입문하는 과정에 가깝다.

정년을 불과 몇 년 앞둔 시점이라면 선택지는 더 좁아진다.

퇴직 이후에도 일을 해야 하지만 새로운 직종에서 처음부터 다시 시작해야 하고, 임금과 고용조건 역시 이전보다 낮아질 가능성을 감수해야 한다.

실업급여 417억원이 보여주는 또 다른 비용

5,861명에게 지급된 실업급여 417억원은 단순한 복지지출 숫자가 아니다.

기업의 경영위기가 노동시장과 사회보험으로 옮겨간 비용이기도 하다.

회사가 고용을 유지하지 못하면 노동자는 실업급여를 받고, 재취업 훈련과 구직지원 프로그램이 가동되며, 임금과 퇴직금이 체불될 경우에는 정부 대지급금 제도까지 작동한다.

실제로 정부는 홈플러스 근로자에게 체불임금과 퇴직금 등을 대상으로 1인당 최대 2,100만원의 대지급금을 지원하고, 체불액 범위에서 최대 1천만원의 저금리 생계비 융자를 제공했다.

체불근로자 생계비 융자를 받은 홈플러스 전·현직 직원도 6천명을 넘었고 지원액은 400억원대를 기록했다.

기업의 재무위기가 길어질수록 비용은 기업 내부에만 머무르지 않고 고용보험과 임금채권보장제도, 재취업 지원예산으로 이동하게 되는 구조다.

대지급금은 퇴직금을 ‘없애는 돈’이 아니다

여기에는 법적으로 구분해야 할 부분이 있다.

정부가 지급하는 대지급금은 회사의 퇴직금 지급의무를 면제해주는 지원금이 아니다.

임금채권보장법은 사업주가 지급하지 못한 임금이나 퇴직급여의 일정 범위를 정부가 우선 근로자에게 지급할 수 있도록 하고 있으며, 정부가 지급한 부분에 대해서는 이후 사업주를 상대로 권리를 행사하는 구조다.

따라서 퇴직자가 대지급금으로 일부 금액을 받았다고 해서 회사가 부담해야 할 전체 퇴직금 채무가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대지급금 한도를 초과한 미지급분은 여전히 별도로 남을 수 있다.

기업회생 절차에서도 임금과 퇴직금은 일반적인 회생채권과 다르게 취급된다.

현행 채무자회생법은 근로자의 임금·퇴직금·재해보상금을 공익채권으로 규정하고 있다.

이는 다른 일반 회생채권처럼 회생계획에 따라 대폭 감면되는 채권과는 법적 성격이 다르다는 뜻이다.

퇴직금은 2030년이 아니라 2028년까지 전액 변제 계획

홈플러스 퇴직자 문제에서 특히 혼동하기 쉬운 것이 변제 시점이다.

현재 법원이 인가한 회생계획안에 따르면 약 633억원 규모의 급여·퇴직금은 2027년 2월까지 69%를 지급하고, 2028년 2월까지 전액 변제하는 일정으로 잡혀 있다.

2030년 2월까지 장기간 분할상환하는 대상은 주로 미지급 납품대금 등 다른 공익채권이다.

납품대금은 약 5,032억원 규모로, 2028년까지 0.5%, 2029년까지 20.3%, 2030년 2월까지 나머지를 상환하는 계획이다.

따라서 직원 퇴직금까지 모두 2030년까지 기다려야 하는 구조로 표현하면 현재 인가된 회생계획과 맞지 않는다.

다만 2028년까지라는 일정 역시 퇴직한 노동자의 입장에서는 짧지 않다.

지금 당장 생활비와 재취업 준비비용이 필요한 상황에서 수년 뒤의 전액상환 약속과 현재의 생계는 서로 다른 문제이기 때문이다.

법원 인가가 노동자의 ‘회복’까지 의미하지는 않는다

홈플러스는 지난달 서울회생법원으로부터 회생계획 인가를 받으면서 기업 존속의 중요한 고비를 넘겼다.

자가점포 매각과 추가 자금조달을 통해 채권을 변제하고 영업 정상화를 추진하는 계획도 마련됐다.

기업 입장에서 보면 회생의 시간이 시작된 것이다.

그러나 이미 회사를 떠난 노동자에게는 같은 날부터 회생이 시작되는 것이 아니다.

고용관계가 끝난 노동자는 회사가 정상화되더라도 자동으로 직장을 되찾지 못하고, 장기간 축적한 근속연수도 새 직장에서 이어지지 않는다.

회사는 자산을 매각하고 자금을 조달해 재무제표를 회복할 수 있지만, 퇴직자의 경력은 같은 방식으로 원상복구할 수 없다.

바로 이 차이가 기업회생 통계에서는 잘 보이지 않는다.

50곳 넘는 점포 폐점…지역 일자리도 함께 사라졌다

홈플러스가 회생 과정에서 50곳 넘는 점포를 닫았다는 사실도 고용 문제를 단순한 본사 구조조정으로 보기 어렵게 만든다.

대형마트 한 곳이 폐점하면 직접 고용된 직원만 영향을 받는 것이 아니다.

입점업체 종사자와 협력업체, 시설관리·청소·보안 인력, 주변 상권까지 연결돼 있기 때문에 지역 노동시장에 미치는 영향도 함께 발생한다.

특히 대형마트는 중장년 여성에게 비교적 장기간 안정적으로 일할 수 있는 일자리 가운데 하나였다.

이런 일자리가 한꺼번에 사라질 경우 같은 지역에서 비슷한 임금과 근로시간을 가진 대체 일자리를 찾기 어려울 수 있고, 결과적으로 노동자는 직종 자체를 바꿔야 한다.

홈플러스 퇴직자에게 재취업 문제가 유난히 크게 나타나는 이유도 회사 하나의 문제가 아니라 유통산업의 고용구조 변화와 맞물려 있기 때문인지 추가로 살펴볼 필요가 있다.

Next Insight 분석 | 회사는 회생할 수 있지만 20년 경력도 회생할 수 있을까

기업회생 절차는 회사의 존속 가능성을 중심으로 설계돼 있다.

어떤 자산을 팔고, 얼마를 조달하고, 채권을 몇 년 동안 어떻게 갚을 것인지가 회생계획의 핵심이 된다.

하지만 홈플러스 사태의 숫자를 노동자의 방향에서 다시 읽으면 전혀 다른 장면이 보인다.

9천명이 회사를 떠났고, 실업급여를 받은 사람 5,861명 가운데 84%가 여성이었으며 66%는 50·60대였다.

재취업률은 19.9%에 머물렀고, 오랜 기간 마트에서 일한 노동자 가운데 일부는 요양보호사와 장애인활동지원사처럼 전혀 다른 직종으로 이동하기 위해 다시 교육을 받고 있다.

여기에서 구조조정의 진짜 비용이 드러난다.

기업은 회생계획을 통해 부채상환 시간을 확보할 수 있고 자산을 매각해 재무상태를 다시 만들 수 있다. 하지만 19년 동안 한 직장에서 쌓은 노동자의 경력에는 회생계획안이 없다.

더구나 이번에 가장 많이 회사를 떠난 집단은 노동시장에서 다시 안정적인 정규 일자리를 얻기가 상대적으로 쉽지 않은 중장년 여성이다.

그렇다면 정책의 기준도 단순한 실업급여 지급 건수를 넘어설 필요가 있다.

몇 명에게 얼마를 지원했는지만 볼 것이 아니라, 이들이 어떤 일자리로 이동했고 이전 임금과 근로시간을 얼마나 회복했는지, 재취업 뒤 얼마나 오래 고용을 유지했는지를 추적해야 실제 회복 여부를 알 수 있다.

취업지원 프로그램을 이용한 집단의 취업률이 상대적으로 높았다는 사실은 이 문제에 개입할 여지가 있다는 점도 보여준다.

기업회생은 법원이 계획안을 인가하면 일정한 이정표를 세울 수 있지만, 노동자의 회복에는 그런 날짜가 없다.

홈플러스가 살아남느냐만큼 중요한 질문은 이미 홈플러스를 떠난 수천명의 삶이 어디에 도착하고 있느냐는 것이다.

그리고 9천명이라는 숫자 뒤에서 가장 먼저 확인해야 할 것은 단순한 퇴직자 수가 아니다.

84%의 여성과 66%의 50·60대가 다시 어떤 일자리에서 삶을 이어가고 있는지다.

작성·취재 | Next Insight News 김귤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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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자료

  • 고용노동부, 홈플러스 퇴직자 실업급여·재취업 지원 현황 국회 제출자료
  • KBS, 홈플러스 퇴직자 9천명 및 실업급여·재취업 실태 취재자료
  • 재정경제부·관계부처, 홈플러스 근로자 및 협력업체 지원대책
  • 국가법령정보센터, 「임금채권보장법」 제7조
  • 국가법령정보센터, 「채무자 회생 및 파산에 관한 법률」 제179조
  • 서울회생법원, 홈플러스 회생계획안 인가 관련 자료
  • 홈플러스 회생계획안, 급여·퇴직금 및 공익채권 변제계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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