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19년 헌재 결정 뒤 후속입법 공백…2021년 낙태죄 효력 상실에도 약물 허가 장기간 정체
법제처 “모자보건법은 약물 허가 금지하지 않아…요건 충족 땐 허가해야”
정부는 9주 이내 약물·초기 2년 의료기관 관리 추진…품목허가는 아직 심사 중
2019년 헌법재판소의 낙태죄 헌법불합치 결정 이후 7년. 정부가 임신중지 약물의 제도권 도입을 공식화했다.
하지만 막혀 있던 문을 직접 연 것은 국회의 법 개정이 아니었다.
전환점은 한 달 전인 2026년 8월 19일 법제처 법령해석이었다.
법제처는 현행 모자보건법이 ‘인공임신중절수술’만 규정하고 있다는 이유만으로 임신중지 약물의 수입품목허가를 금지할 수 없다고 판단했다. 더 나아가 안전성·유효성 등 약사법상 요건을 충족한다면 식품의약품안전처의 품목허가는 행정기관이 임의로 선택할 문제가 아니라 기속행위라고 해석했다.
7년간 이어진 입법 공백 속에서 약물 도입의 법적 경로가 처음으로 명확해진 순간이었다.
2019 헌재 결정, 2021 처벌조항 실효…그런데 약은 들어오지 못했다
헌법재판소는 2019년 4월 11일 자기낙태죄와 의사의 낙태죄 조항에 헌법불합치 결정을 내리고, 2020년 말까지 대체입법을 주문했다. 국회가 시한까지 법을 고치지 못하면서 해당 처벌조항은 2021년부터 효력을 잃었다.
그러나 처벌조항이 사라진 것과 임신중지 의료체계가 만들어지는 것은 다른 문제였다.
현행 모자보건법은 여전히 ‘인공임신중절수술’을 중심으로 작성돼 있다. 약물을 이용한 임신중지 방법과 허용범위, 의료기관·약국의 역할 등은 명확하게 정리되지 않았다.
현대약품은 2024년 12월 31일 미페프리스톤과 미소프로스톨 복합제인 ‘미프지미소정’의 국내 품목허가를 다시 신청했다. 신청 적응증은 임신 63일, 즉 9주 이내 자궁 내 임신 중절이다. 허가 신청 자체가 최종 승인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며 식약처의 안전성·유효성 심사가 현재 진행 중이다.
8월19일, 법제처가 바꾼 질문
그동안 논쟁은 “모자보건법을 먼저 고치지 않고 약물을 허가할 수 있는가”에 집중됐다.
법제처의 답은 달랐다.
모자보건법이 수술을 규정하고 있다는 사실은 약물 방식을 금지했다는 뜻이 아니며, 약물의 수입품목허가 여부는 약사법에 따라 판단해야 한다는 것이다. 법제처는 현행 법에 임신중지 약물이나 그 품목허가를 금지하는 규정이 없다고 설명했다.
특히 약사법상 허가요건을 모두 충족했다면 식약처가 별도의 정책적 판단으로 허가를 거부할 수 있는 구조가 아니라는 해석까지 내놨다.
다만 법제처 법령해석은 법원의 확정판결과 같은 법적 구속력을 갖는 것은 아니다. 법제처도 행정부 내부에서 통일적인 법 집행 방향을 제시하는 해석이라고 명시하고 있다.
따라서 이번 해석은 임신중지 허용범위 전체를 정리한 새로운 법률이 아니라 의약품 허가를 가로막던 법 해석상의 쟁점을 정리한 것에 가깝다.
‘9주’는 새로운 낙태 허용시한이 아니다

16일 정부가 제시한 도입안에서 가장 눈에 띄는 숫자는 임신 9주다.
그러나 이것을 한국의 새로운 법정 임신중지 허용시한으로 이해하면 정확하지 않다.
9주는 현재 현대약품이 제출한 품목허가 신청의 사용범위다. 회사가 제출한 임상자료도 미페프리스톤 200㎎과 미소프로스톨 800㎍을 이용해 임신 63일 이하에서 효과와 안전성을 평가한 자료다.
즉 약의 허가범위와 국가가 정할 임신중지의 법적 허용범위는 서로 다른 문제다.
후자는 여전히 국회의 입법 논의가 필요한 영역으로 남아 있다.
첫 2년 의료기관 관리…안전장치인가, 또 다른 법적 과제인가
정부는 도입 초기 2년간 의료기관 안에서 의사가 처방하고 조제하는 방식으로 보수적으로 운영한 뒤, 안전성 등을 평가해 단계적으로 확대한다는 계획을 제시했다. 식약처는 내년 1분기 내 도입을 위해 심사를 진행하겠다고 밝혔다.
정부는 불법 유통되는 검증되지 않은 약물 사용을 제도권 의료체계 안으로 끌어들여 안전관리를 강화한다는 취지를 설명하고 있다.
반면 산부인과 의료계에서는 허용주수와 처방·사후관리 기준 등 입법적 틀이 충분하지 않은 상태에서 약물부터 도입하면 의료현장에 판단 책임이 집중될 수 있다는 우려도 제기한다.
결국 약 하나를 허가하는 것으로 모든 문제가 끝나는 것은 아니다.
누가 처방할지, 어디에서 조제할지, 응급상황과 부작용은 어떻게 관리할지, 비용과 건강보험은 어떻게 정할지까지 후속 제도가 필요하다.
Next Insight 분석 | 법이 없어서 못 한 것과 법이 금지한 것은 달랐다

7년 동안 임신중지약 논의는 ‘입법 공백’이라는 한 문장에 갇혀 있었다.
그러나 8월 19일 법제처 해석은 그 공백을 둘로 나눴다.
임신중지의 허용범위와 절차를 법으로 정비해야 한다는 문제와, 안전성·유효성을 갖춘 의약품을 현행 약사법 아래 허가할 수 있는가는 같은 질문이 아니었다.
법제처는 두 번째 질문에는 길이 있다고 봤다.
그렇다고 첫 번째 질문까지 해결된 것은 아니다.
2019년 헌재 결정 이후 국회가 끝내 정리하지 못한 허용주수, 상담·의료절차, 의료인의 역할과 책임은 여전히 남아 있다.
따라서 이번 정책의 의미는 ‘7년 만에 모든 법적 문제가 해결됐다’가 아니다.
법 개정을 기다리는 동안에도 약사법상 허가절차는 진행할 수 있다는 행정적 문이 열렸다는 것.
그 문을 연 날짜가 2026년 8월 19일이다.
취재·작성: 김귤연 기자 | Next Insight New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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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자료
법제처 2026년 8월 19일 임신중지약물 수입품목허가 법령해석, 헌법재판소 2019년 4월 11일 낙태죄 헌법불합치 결정, 현대약품 미프지미소정 품목허가 신청 공시, 정부 임신중지 약물 도입방안, 식품의약품안전처 허가심사 관련 자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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