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통령 임명권인가 대법원장 제청권인가…손봉기 재제청 거부가 만든 헌법 충돌

조희대 “헌법적 근거 찾기 어렵다”…청와대 재제청 요구 거부
민주당 공세까지 격화…헌법 104조가 나눈 제청·동의·임명권의 경계 쟁점

손봉기 대법관 후보자를 둘러싼 청와대와 대법원의 충돌이 정치권 공방으로 번지고 있다.

더불어민주당은 26일 청와대의 재제청 요구를 받아들이지 않은 조희대 대법원장을 향해 강한 비판을 쏟아냈다. 박성준 수석대변인은 조 대법원장을 윤석열 전 대통령과 비교하며 사법부 전체가 대가를 치를 수 있다는 취지로 주장했다.

그러나 이번 사안을 정치권의 거친 표현만으로 보면 핵심을 놓치기 쉽다.

쟁점의 출발점은 헌법 제104조 제2항이다.

“대법관은 대법원장의 제청으로 국회의 동의를 얻어 대통령이 임명한다.”

한 문장 안에 대법원장의 제청권, 국회의 동의권, 대통령의 임명권이 나눠져 있다. 문제는 대법원장이 제청한 사람을 대통령이 받아들이지 않을 경우 그다음 절차를 헌법이 별도로 규정하고 있지 않다는 데 있다.

손봉기 제청에서 시작된 충돌

조희대 대법원장은 지난 8월 18일 노태악 전 대법관 후임으로 손봉기 대구지법 부장판사를, 이흥구 대법관 후임으로 김성수 서울고법 부장판사를 이재명 대통령에게 제청했다.

통상 대법관 제청은 대통령과 대법원장이 사전 협의를 거친 뒤 대면 방식으로 이뤄져 왔다. 이번에는 양측이 손 후보자를 놓고 합의에 이르지 못한 상태에서 조 대법원장이 서면으로 제청했다.

청와대는 김성수 후보자의 임명동의 절차는 진행했지만 손 후보자에 대해서는 국회에 임명동의안을 보내지 않고 다른 후보자를 다시 제청해 달라고 요구했다.

청와대는 충분한 협의가 이뤄지지 않았다는 점과 대법원 구성의 다양성 등을 이유로 들었다.

여기서 처음으로 제청과 임명이라는 두 헌법상 권한이 정면으로 맞부딪혔다.

조희대 “재제청 요구의 헌법적 근거 없다”

조 대법원장은 지난 22일 청와대 요구를 받아들일 수 없다는 입장을 공식적으로 밝혔다.

대법원은 청와대가 보낸 재제청 요청 문서에 구체적인 사유와 헌법적 근거가 적혀 있지 않고, 달리 재제청 요구를 정당화할 구체적인 근거도 찾기 어렵다는 취지로 설명했다.

청와대는 이에 반발했다.

대법원장의 제청만으로 사실상 인사가 확정되고 대통령이 이를 반드시 받아들여야 한다면 헌법이 대통령에게 부여한 임명권이 형식적인 권한으로 축소된다는 논리다.

결국 양측의 주장은 같은 헌법 조항에서 출발하지만 강조하는 권한이 다르다.

대법원은 ‘제청’을, 청와대는 ‘임명’을 실질적 헌법 권한으로 보고 있다.

헌법에는 ‘재제청’이 없다

법적으로 가장 중요한 지점은 여기에 있다.

헌법 제104조는 대법원장이 제청하고 국회가 동의한 뒤 대통령이 임명한다고 정하고 있지만, 대통령이 후보자를 받아들이지 않았을 때 대법원장에게 다른 사람을 다시 제청하도록 요구할 수 있는지는 규정하지 않고 있다.

반대로 대통령이 대법원장이 제청한 후보를 반드시 임명해야 한다는 문구도 없다.

법조계에서도 해석은 하나로 정리돼 있지 않다.

제청권과 임명권을 각각 독립된 헌법기관의 고유 권한으로 보고 어느 한쪽이 우위에 있다고 보기 어렵다는 견해가 있다. 이 경우 대법원장은 자신의 제청권을 행사하고 대통령 역시 별도의 임명권을 행사할 수 있다는 해석이 가능하다.

반면 그동안 대통령과 대법원장이 사전에 협의해 후보자를 정해 온 관행 자체에 헌법적 의미를 부여해야 한다는 견해도 있다.

따라서 현 단계에서 청와대의 재제청 요구나 조 대법원장의 거부 가운데 어느 한쪽을 이미 위헌 또는 위법이라고 단정하는 것은 신중할 필요가 있다.

민주당 “윤석열의 몰락의 길”…정치 공방 격화

이런 제도적 충돌에 정치권이 가세하면서 논쟁의 수위는 더 높아졌다.

박성준 민주당 수석대변인은 26일 조 대법원장을 향해 “윤석열이 걸어간 몰락의 길을 한 걸음씩 그대로 밟고 있다”고 주장했다.

또 조 대법원장이 사법부를 무너뜨리고 있다거나 외부 정치 세력과 손잡고 움직인다는 국민적 의구심이 커지고 있다는 취지의 비판도 내놨다.

이는 민주당의 정치적 주장이다. 현재 공개된 자료만으로 조 대법원장이 특정 정치 세력과 연계해 대법관 인사를 했다고 확인된 것은 아니다.

이번 논쟁에서 정치적 평가와 확인된 제도적 사실을 구분해야 하는 이유다.

장기 공석도 현실적인 문제

헌법적 권한 다툼이 길어질수록 또 다른 문제가 생긴다.

노태악 전 대법관이 퇴임한 뒤 후임 인선이 지연되면서 대법관 공석이 장기화됐다. 사법부 입장에서는 사건 심리와 대법원 구성에 부담이 될 수밖에 없다.

하지만 공석을 빨리 해소하는 것과 헌법기관 사이의 권한 관계를 정리하는 것은 별개의 문제다.

이번에 한쪽이 물러서더라도 그 방식이 새로운 선례로 남을 수 있다.

대통령이 받아들이지 않는 후보를 대법원장이 다시 제청해야 하는 관행이 만들어질 수도 있고, 반대로 대법원장의 제청을 대통령이 사실상 거부하기 어려운 관행으로 굳어질 수도 있다.

그래서 손봉기 후보자 한 사람을 넘어선 문제가 된다.

Next Insight 분석 | 문제는 조희대 한 사람이 아니라 대법관을 누가 사실상 선택하느냐

이번 충돌을 조희대 대법원장과 이재명 대통령 사이의 힘겨루기로만 보면 제도의 핵심을 놓치게 된다.

질문은 더 단순하다.

대법관을 사실상 누가 선택하는가.

대법원장의 제청권이 절대적이라면 대통령의 임명권은 최종 절차에 가까워질 수 있다. 반대로 대통령이 마음에 들지 않는 후보를 계속 돌려보낼 수 있다면 대법원장의 제청권 역시 사실상 후보 추천권 수준으로 약해질 수 있다.

헌법은 그래서 한 기관에 모든 권한을 주지 않았다.

대법원장이 제청하고, 국회가 동의하고, 대통령이 임명하도록 세 단계로 나눴다.

그러나 세 권한이 충돌했을 때 어디까지 양보해야 하는지는 적어놓지 않았다.

그동안은 협의라는 정치적·헌법적 관행이 이 빈틈을 메웠다. 이번에는 그 협의가 실패하면서 헌법 문장 속에 숨어 있던 문제가 밖으로 드러났다.

손봉기 후보자의 임명 여부도 중요하다. 하지만 더 오래 남을 문제는 이번 충돌이 어떤 선례를 만드는가다.

대통령 임명권과 대법원장 제청권 가운데 어느 하나를 형식적인 권한으로 만들어서는 권력분립의 취지가 약해질 수 있다.

이번 논쟁에서 확인해야 할 것은 누가 정치적으로 이기느냐가 아니라, 대법관을 선출하는 세 헌법기관의 권한이 앞으로 어떤 방식으로 작동하게 되느냐다.

작성·취재 | Next Insight News 김귤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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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자료

대한민국헌법 제104조
대법원 대법관 임명제청 관련 발표
청와대 대법관 후보자 재제청 관련 입장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대법관 제청 관련 현안 질의
더불어민주당 대법관 재제청 관련 브리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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