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사는 빨라지는데 억울함도 빨라지나…경찰 ‘처리실적 평가’가 놓쳐선 안 될 것

사건 적체 줄이려 처리기간·장기사건 비율 평가…수사관 1인당 사건 부담도 여전히 높아

현장선 “처리 건수 중심 평가가 어려운 사건 기피 부른다”…속도보다 정확성·통제장치가 핵심

사건이 몇 달, 몇 년씩 지연되는 것도 국민에게는 피해다. 피해자는 결과를 기다려야 하고, 피의자로 지목된 사람 역시 장기간 불확실한 상태에 놓인다.

경찰이 사건 처리기간을 줄이고 장기사건을 해소하려는 이유다.

문제는 이 ‘속도’가 인사와 실적 평가에 강하게 연결될 때다. 복잡하고 오래 걸리는 사건을 충분히 조사하기보다 이미 잡힌 방향대로 빨리 종결하는 것이 더 유리해지는 구조가 만들어진다면, 수사의 신속성이 오히려 정확성을 해칠 수 있다.

실제 평가에 들어가는 ‘처리기간’

경찰은 2023년부터 경찰서 수사부서 과·팀장의 지휘역량평가를 운영하고 있다.

평가에는 사건 처리기간과 장기사건 비율 같은 실적 수치가 포함되며, 최근 3년 동안 ‘부적절’ 판정을 받은 과·팀장은 338명으로 집계됐다.

사건 적체를 줄이기 위한 관리 자체는 필요하다. 하지만 모든 사건의 난도가 같은 것은 아니다.

단순 폭행이나 절도와 달리 사기·횡령·배임·가상자산 사건은 계좌추적과 자료 분석, 다수 관계인 조사, 법리 검토까지 필요하다. 같은 한 건이라도 들어가는 시간과 인력이 전혀 다를 수 있다.

“처리 건수 중심 평가가 어려운 사건 기피”

이 문제는 이미 현장에서 제기되고 있다.

최근 경제범죄 수사 실태를 다룬 취재에서는 일선 경찰 관계자들이 처리 건수 중심 인사평가 때문에 복잡하고 어려운 사건을 기피하는 경향이 커졌다고 지적했다.

한 사건에 오랜 시간을 투입하면 처리 실적에서는 불리해질 수 있고, 반대로 서둘러 결론을 내리면 검찰의 보완수사 요구가 다시 내려오는 악순환도 발생할 수 있다는 것이다.

여기서 단순한 질문 하나가 남는다.

폭행 사건 20건을 빠르게 처리한 수사관과 수개월간 복잡한 금융사기 한 건을 파헤친 수사관을 같은 ‘처리 건수’ 기준으로 평가하는 것이 과연 타당한가.

고소·고발 사건은 ‘처음부터 범죄가 확인된 사건’이 아니다

특히 고소·고발 사건에서는 속도보다 초기 판단의 정확성이 중요하다.

고소장은 범죄가 확정됐다는 문서가 아니라 한쪽 당사자의 주장이다.

따라서 수사는 고소인의 주장만 확인하는 데서 끝나서는 안 된다. 피고소인의 반론을 듣고, 객관자료를 확인하고, 서로 다른 가능성을 검토한 뒤 결론을 내리는 과정이 필요하다.

문제는 처리속도가 강한 성과지표가 될 경우다.

처음 세운 가설과 다른 자료가 나오더라도 수사 방향을 다시 검토하기보다 기존 판단에 맞춰 사건을 빨리 종결할 유인이 생길 수 있다. 모든 경찰 수사가 실제로 그렇게 진행된다는 뜻은 아니다. 그러나 평가체계가 잘못 설계되면 그런 위험을 키울 수 있다는 문제다.

수사 절차 오류는 지금도 계속 점검 대상

국가인권위원회는 최근에도 경찰 수사절차와 관련한 개선을 요구하고 있다.

인권위는 올해 경찰의 피의자신문조서 작성 주체를 규정한 경찰수사규칙이 형사소송법 취지와 맞지 않는다며 규칙 개정을 권고했다.

또 관행적으로 이뤄진 심야조사를 인권침해로 판단해 경찰청에 재발방지대책 마련을 권고하기도 했다.

사건관계인의 영상 제공, 피의사실 공개, 발달장애인의 방어권 보장 문제 역시 최근까지 제도 개선 대상이 됐다.

개별 사례가 경찰 전체의 수사 수준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수사기관 내부의 관행과 절차가 언제든 국민의 권리와 충돌할 수 있다는 점은 분명하다.

경찰도 ‘사건 난도’를 보기 시작했다

경찰도 기존 방식의 한계를 인식하고 있다.

2025년 수사관 1인당 연간 사건 처리 건수는 평균 133.8건이었다. 경찰은 인력 충원으로 이를 103건 수준까지 낮췄고, 추가 인력이 배치되면 70~80건 수준까지 줄어들 것으로 보고 있다.

경찰 수사개혁위원회는 부서별 특성과 사건 난도를 고려한 적정 보유 사건 수를 검토하고 있으며, 징계제도와 외부통제 강화 방안도 함께 논의하고 있다.

경찰 스스로도 ‘국민 신뢰 제고’를 수사개혁의 목표로 내걸었다.

이는 결국 수사의 신속성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Next Insight 분석 | 빠른 종결보다 중요한 것은 틀린 수사를 되돌릴 수 있는 구조다

사건을 빨리 처리하는 것은 중요하다.

피해자에게도, 피의자로 지목된 사람에게도 장기간 이어지는 수사는 큰 부담이다.

하지만 수사기관의 판단 역시 사람이 하는 일이다. 처음 방향을 잘못 잡을 수도 있고, 중요한 자료를 놓칠 수도 있으며, 새로운 증거에 따라 기존 판단을 수정해야 할 때도 있다.

그래서 형사사법에서 더 중요한 것은 단순히 사건을 빨리 끝내는 것이 아니라 잘못된 판단을 다시 검토할 수 있는 구조다.

처리기간을 얼마나 단축했는지만 볼 것이 아니라 반대증거를 충분히 검토했는지, 당사자의 이의제기를 제대로 살폈는지, 복잡한 사건을 단순화해 종결하지 않았는지, 수사심사와 외부통제가 실제로 작동했는지까지 함께 평가해야 한다.

수사의 속도가 빨라졌다는 숫자가 국민의 신뢰로 바로 이어지는 것은 아니다.

국민이 원하는 것은 사건이 빨리 끝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사건이 제대로 조사됐다고 믿을 수 있는 결과다.

작성·취재 | Next Insight News 김귤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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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자료

경찰청
국가수사본부
국민 신뢰 제고를 위한 경찰 수사 개혁위원회
국가인권위원회
국회 제출 경찰청 자료
서울신문 경제범죄 수사 실태 보도
연합뉴스 경찰 수사지휘역량평가·수사개혁위원회 관련 보도

해시태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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