징병제는 유지하고 선택권은 넓힌다…이재명 정부 ‘선택적 모병제’의 실험

첨단기술 부사관·경제적 인센티브·전역 후 취업 연계 추진

‘군 복무는 희생’에서 ‘국가가 보상하고 경력으로 인정하는 시간’으로 전환 시도

청년정책과 국방개혁 결합…재정부담·병역 형평성·전투력 검증은 과제

이재명 정부가 추진하고 있는 ‘선택적 모병제’가 우리나라 병역제도의 새로운 실험으로 떠오르고 있다.

핵심은 현재의 징병제를 폐지해 모든 군인을 자발적으로 모집하는 전면적 모병제로 바꾸는 것이 아니다. 현행 국민개병제와 의무복무 체계를 유지하면서 병역의무 대상자에게 일반 현역병 복무와 장기복무형 전문인력 등의 선택 기회를 확대하고, 전문 복무를 선택한 청년에게 경제적 보상과 기술교육, 전역 후 취업 연계 등을 제공하는 방식이다.

이재명 대통령은 올해 3월 전군 주요지휘관회의에서 미래 전장을 주도하기 위해서는 스마트 강군으로의 전환이 필요하다며 선택적 모병제를 포함한 국방개혁에 속도를 내줄 것을 주문했다.

이어 6월에는 청년 장병들이 군 복무 과정에서 쌓은 경험과 역량이 사회에 복귀한 이후에도 성장의 기반이 될 수 있도록 실질적인 지원 방안을 마련할 것을 정부에 주문했다.

선택적 모병제를 단순한 병력 충원제도가 아니라 청년의 교육·고용·경력 문제와 연결하려는 방향이 보다 분명해진 것이다.

■ ‘모병제 전환’이 아니라 징병제와 직업군인의 혼합

국방부가 밝힌 선택적 모병제의 기본 구상은 비교적 명확하다.

국민개병제는 유지한다.

다만 병역대상자가 일반 현역병으로 복무하는 방법 외에 일정 기간 동안 AI·드론·사이버·무인체계 등 첨단 분야의 기술집약형 부사관으로 복무할 수 있는 선택지를 확대한다는 것이다.

전면적 모병제와는 상당한 차이가 있다.

전면 모병제는 법적인 병역 의무 자체를 크게 축소하거나 폐지하고 군이 필요한 병력을 급여와 복지를 제공해 모집하는 방식이다.

반면 이재명 정부가 검토하는 선택적 모병제는 의무복무 제도를 유지하면서 일부 병역자원을 직업군인 또는 전문기술 인력으로 유도하는 일종의 ‘징병제+모병제 혼합형’에 가깝다.

따라서 “이재명 정부가 징병제를 없애고 모병제로 전환한다”고 표현하는 것은 현재 정부가 공개한 정책 방향과는 차이가 있다.

■ 왜 선택적 모병제인가…가장 큰 배경은 인구감소

제도 개편을 논의하는 첫 번째 이유는 병역자원의 급격한 감소다.

저출생이 장기간 지속되면서 군에 입대할 수 있는 청년 인구도 지속적으로 줄고 있다.

과거와 같은 대규모 병력을 계속 유지하려면 결국 병역판정 기준을 완화하거나 복무기간을 늘리는 등의 방법을 검토해야 하지만 청년층의 부담 증가와 군의 질적 경쟁력 저하라는 문제가 뒤따를 수 있다.

정부가 선택한 다른 방향은 사람의 숫자를 무조건 유지하는 대신 군의 기술집약도를 높이는 것이다.

AI와 드론, 무인체계, 정밀유도무기, 사이버전, 우주·전자전 등 현대전에서 중요성이 커지는 분야에 전문인력을 집중 배치해 적은 병력으로도 높은 전투력을 유지한다는 구상이다.

결국 선택적 모병제는 저출생 대응 정책인 동시에 군 구조개혁 정책인 셈이다.

■ 현대전도 달라졌다…‘병력 숫자’에서 ‘기술 전문성’으로

최근 전쟁은 과거처럼 병력 규모만으로 승패를 결정하기 어려워지고 있다.

우크라이나 전쟁과 중동 분쟁에서는 드론과 위성정보, 인공지능, 정밀타격체계, 전자전과 사이버전 능력이 전쟁의 양상을 크게 바꾸고 있다.

대한민국 역시 북한과 대치하고 있는 특수한 안보환경 때문에 일정 규모의 병력은 반드시 유지해야 하지만 동시에 첨단무기를 운용할 수 있는 전문인력 확보가 더욱 중요해지고 있다.

짧은 의무복무 기간 동안 고도의 전문기술을 교육하고 숙련도를 유지하는 데는 한계가 있다는 것이 군이 안고 있는 구조적 문제다.

이 때문에 정부는 일정한 청년들이 장기간 전문기술 분야에서 복무하도록 유도하고 충분한 경제적 보상을 제공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 군 복무를 ‘청년 경력’으로 인정한다는 새로운 접근

선택적 모병제에서 주목해야 할 부분은 국방제도와 청년정책을 결합하려는 시도다.

우리 사회에서 군 복무는 오랫동안 국가를 위한 의무와 희생이라는 관점에서 접근돼 왔다.

그러나 청년 입장에서는 군 복무 기간 동안 대학이나 취업 준비, 직장 경력이 중단되는 현실적인 비용이 발생한다.

특히 또래 청년이 대학을 졸업하거나 취업을 준비하는 동안 병역의무를 이행해야 하는 청년들에게 군 복무는 단순히 18개월 안팎의 시간 문제가 아니다.

취업 시기와 소득 형성, 경력 축적이 늦어지는 문제로 이어진다.

이재명 정부가 강조하는 방향은 바로 이 지점에 있다.

국가가 병역의무를 요구한다면 그 부담을 개인에게만 떠넘길 것이 아니라 재정적·제도적·사회적으로 보상해야 한다는 것이다.

■ 첫 번째는 ‘경제적 보상’

정부가 검토하고 있는 가장 직접적인 수단은 경제적 인센티브다.

기술집약형 부사관이나 장기복무를 선택하는 청년에게 일반 병사보다 높은 급여와 각종 수당을 지급해 군 복무를 하나의 전문 직업으로 만들겠다는 구상이다.

여기에 교육지원과 자격증 취득, 전역지원금 등의 제도가 결합될 가능성이 있다.

정책이 제대로 설계된다면 청년에게 군 복무가 단순한 의무가 아니라 일정 기간 안정적인 소득을 얻으면서 전문기술을 습득하는 선택지가 될 수 있다.

그러나 충분한 보수를 지급하지 못하면 전문인력 모집 자체가 어려워질 가능성이 높다.

결국 선택적 모병제의 성공 여부는 국가가 어느 수준까지 재정을 투입할 것인지와 직접 연결될 수밖에 없다.

■ 두 번째는 ‘군 경력의 사회적 인정’

경제적 보상만큼 중요한 문제가 복무경력의 인정이다.

군에서 AI 운용, 드론, 통신, 사이버보안, 정비, 전자장비 등의 전문기술을 익혔더라도 사회에서 이를 경력으로 인정받지 못한다면 청년들에게 장기복무를 선택할 이유가 줄어든다.

따라서 군에서 받은 교육과 근무 경력을 국가 자격이나 산업계의 경력으로 연결하는 제도가 중요하다.

예를 들어 군에서 드론 운용과 정비를 담당했다면 관련 민간자격·국가자격과 연계하고, 사이버보안 분야에서 복무했다면 IT기업 취업에 활용할 수 있는 공식적인 경력으로 인정하는 방식이다.

군과 기업, 대학, 국가자격체계가 연결돼야 가능한 정책이다.

이 부분이 정착된다면 군 복무는 청년의 경력을 중단시키는 시간이 아니라 오히려 첫 번째 직업훈련 기간이 될 수도 있다.

■ 세 번째는 전역 이후 취업과 교육의 연계

정부가 선택적 모병제에서 강조하는 또 다른 핵심은 전역 후 사회진출이다.

기술집약형 군 인력이 전역한 뒤 방산기업이나 정보통신기업, 드론·로봇·AI·반도체·사이버보안 관련 기업에 취업할 수 있도록 정부와 군이 연결하는 방식이다.

이 경우 군은 필요한 전문인력을 확보할 수 있고 기업은 일정 기간 실무경험을 갖춘 인력을 확보할 수 있다.

청년은 안정적인 군 복무와 기술교육, 취업이라는 경로를 동시에 확보할 수 있다.

정책 설계가 제대로 이뤄진다면 ‘군 복무→기술교육→경력인정→취업’이라는 하나의 청년 경력 시스템이 만들어질 수 있다는 의미다.

■ 정치적으로 보면 진보정책인가, 보수정책인가

선택적 모병제를 정치적 이념으로만 분류하면 흥미로운 특징이 나타난다.

청년의 병역 부담을 국가가 적극적으로 보상하고 사회적 경력으로 인정하겠다는 측면에서는 진보적 사회정책의 성격이 있다.

국가가 단순히 의무만 요구하는 것이 아니라 그 과정에서 발생하는 개인의 손실을 보상해야 한다는 논리는 복지국가적 접근과 연결된다.

반면 국방 측면에서는 상당히 현실주의적이고 보수적인 요소도 포함돼 있다.

징병제를 폐지하지 않고 국민개병제를 유지하면서 첨단무기와 직업군인 비중을 확대해 전투력을 강화하겠다는 것이기 때문이다.

이재명 대통령 역시 선택적 모병제를 언급하면서 자주국방과 스마트 강군, 한미동맹과 연합방위태세를 함께 강조했다.

따라서 이 정책을 진보 또는 보수 한쪽의 정책이라고 단정하기는 어렵다.

오히려 ‘청년에게는 더 많은 보상과 선택권을 주되 국가는 더 전문적이고 강한 군대를 확보한다’는 실용주의적 병역개편​의 성격이 강하다.

■ 긍정적 측면…군 복무에 대한 ‘공정한 보상’ 논의

선택적 모병제가 갖는 가장 큰 정치·사회적 의미는 병역의무에 대한 국가 책임을 확대한다는 점이다.

국가는 국민에게 국방의 의무를 요구할 수 있다.

그러나 그 의무를 이행하는 과정에서 발생하는 시간과 기회비용까지 개인이 모두 부담해야 하는지는 별개의 문제다.

특히 군 복무를 직접 이행하는 청년과 그렇지 않은 국민 사이에서 발생할 수 있는 사회적 비용 차이를 국가가 어떻게 보완할 것인가는 오랫동안 논쟁이 이어져 온 문제다.

높은 급여, 경력 인정, 취업지원, 교육지원 등을 제도화한다면 병역의무에 대한 사회적 보상 수준을 높이는 효과가 있다.

■ 그러나 ‘돈 없는 청년만 장기복무’하는 구조는 경계해야

반대 측면의 우려도 있다.

경제적 인센티브가 지나치게 강조될 경우 경제적으로 어려운 청년들이 생계를 위해 장기복무를 선택하고 상대적으로 여유가 있는 청년들은 단기 의무복무를 선택하는 계층별 병역구조가 형성될 가능성이 있다.

해외에서도 모병제를 둘러싸고 반복적으로 제기되는 문제다.

선택권이 존재하더라도 선택의 배경이 경제적 불평등이라면 제도의 공정성에 대한 논란이 생길 수 있다.

따라서 경제적 인센티브뿐 아니라 교육, 전문성, 경력개발이라는 매력을 동시에 제공해야 한다.

■ 여성 병역 문제도 장기적으로 다시 논쟁될 가능성

선택적 모병제가 확대되면 여성의 군 참여 문제 역시 자연스럽게 논의될 가능성이 있다.

첨단기술 중심의 군대로 변화할수록 과거보다 신체적인 조건의 중요성이 상대적으로 낮아지는 병과가 많아진다.

AI와 사이버, 드론, 정보분석, 통신, 우주·전자전 분야 등에서는 성별보다 기술적 전문성이 중요한 경우가 많다.

따라서 선택적 모병제의 모집범위를 어떤 방식으로 설계할 것인지도 장기적으로 중요한 정책 쟁점이 될 수 있다.

다만 이는 현재 정부가 구체적인 제도안을 확정해 발표한 사안과는 구분해야 한다.

■ 가장 중요한 것은 전투력

어떤 병역제도도 최종적인 판단 기준은 국가안보다.

청년의 부담을 줄이고 처우를 개선하는 것은 중요하지만 제도 개편으로 군의 전투준비태세가 약화된다면 정책의 목적을 달성했다고 평가하기 어렵다.

반대로 병력 수는 감소하더라도 충분한 전문인력을 확보하고 AI·드론·무인체계·정밀무기 등을 효과적으로 운용해 실제 전투력이 강화된다면 선택적 모병제는 한국군 구조개혁의 중요한 전환점이 될 수 있다.

결국 정부는 병력 숫자가 몇 명 줄어드는가보다 부대별 전투력이 실제로 유지 또는 강화되는지를 객관적으로 입증해야 한다.

■ 결국 문제는 ‘선택’보다 ‘대가’

이재명 정부의 선택적 모병제는 아직 완성된 제도가 아니다.

정부와 국방부는 큰 방향을 제시했지만 복무기간과 급여, 선발 규모, 적용 병과, 복무 후 경력인정 방식, 기업 취업 연계, 필요한 국가예산 등 상당수 세부내용은 추가 설계가 필요하다.

때문에 현 단계에서는 ‘선택적 모병제를 실시한다’고 확정적으로 평가하기보다 정부가 선택적 모병제 도입을 위한 제도 설계를 추진하고 있다고 표현하는 것이 정확하다.

하지만 정책이 던지는 질문은 분명하다.

대한민국이 계속해서 청년에게 국방의 의무를 요구한다면, 국가는 그 청년들에게 무엇을 돌려줄 것인가.

군 복무를 개인의 희생으로만 남겨둘 것인지, 아니면 충분한 보상과 교육, 경력, 취업을 연결해 청년의 미래에 도움이 되는 시간으로 바꿀 것인지의 문제다.

이재명 정부의 선택적 모병제는 바로 이 질문에서 출발하고 있다.

징병제를 유지하면서도 복무의 선택권을 넓히고, 선택한 청년에게 국가가 더 큰 경제적·제도적 책임을 지겠다는 것이다.

그러나 정책의 성공 여부는 정치적 구호가 아니라 얼마나 합리적인 보상체계를 만들고, 병역 형평성을 지키며, 동시에 대한민국의 실제 군사력을 강화할 수 있는가​에 달려 있다.

선택적 모병제가 청년에게는 ‘희생의 시간’을 ‘성장의 시간’으로 바꾸고, 국가에는 병력 감소 시대의 새로운 강군 모델이 될 수 있을지 앞으로의 세부 제도 설계가 주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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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extInsightNews 김귤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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