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억6000만원 코인보다 더 무서운 ‘사람 정보’…탈북민·현역 장교 노린 북한 공작

북한 공작원 지령받은 40대 1심 징역 5년·자격정지 5년
후원 위장해 탈북민 접근, SNS·흥신소로 현역 장교 동향 추적
비밀문서 아닌 연락처·사진·거주지까지…현대 정보전의 달라진 표적

북한 공작원의 지령을 받아 탈북민과 현역 군인의 정보를 수집한 40대에게 징역 5년이 선고됐다. 사건에서 눈에 띄는 것은 약 6억6000만원의 가상자산보다 수집 대상이다. 군사 작전문서뿐 아니라 탈북민의 연락처와 활동 모습, 군인의 얼굴·거주지·생활동선 같은 ‘사람 정보’가 공작의 표적이 됐다.

6억6000만원 가상자산과 텔레그램 지령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21부는 지난 8월 28일 국가보안법상 간첩 등 혐의로 기소된 A씨(43)에게 징역 5년과 자격정지 5년을 선고했다.

가상자산 투자회사를 운영하던 A씨는 2016년부터 가상화폐 거래 커뮤니티를 통해 북한 정찰총국 소속 공작원과 접촉한 뒤 텔레그램으로 연락을 이어간 것으로 조사됐다. 2021년 2월에는 투자 운영자금 명목으로 약 60만달러, 당시 약 6억6000만원 상당의 가상자산을 받은 것으로 법원은 인정했다.

A씨는 상대가 북한 공작원이 아니라 중국에 거주하는 조선족 프로그래머인 줄 알았다고 주장했지만 재판부는 이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후원자’로 접근한 탈북민 정보 수집

공작원의 첫 표적 가운데 하나는 반북 활동을 하는 탈북민들이었다.

A씨는 한 탈북민 단체 대표에게 후원 의사를 밝히며 접근해 가상자산 지갑을 만들도록 한 뒤 지갑 주소를 공작원에게 전달했다. 북한 공작원이 100만원 상당의 비트코인을 후원금 명목으로 보내자 이를 계기로 대북전단 살포 행사 사진과 영상을 받아낸 것으로 조사됐다.

북한 보위부 출신 탈북민 유튜버에게는 북한 인권에 관심이 있다며 만남을 제안해 연락처 등 신상정보와 활동 상황을 파악했다.

정보를 빼내는 방식은 해킹이나 침입이 아니었다. 후원과 관심이라는 명분으로 신뢰를 만든 뒤 상대가 스스로 정보를 제공하도록 한 접근이었다.

현역 장교 7명 정보…SNS에서 흥신소까지

표적은 현역 군인으로 확대됐다.

2021년 7월 북한 공작원은 A씨에게 현역 장교 7명의 이름·소속 부대·주민등록번호 등이 담긴 신원정보를 보내면서 추가 정보를 확인해 포섭하라는 지령을 내린 것으로 조사됐다.

A씨는 이 가운데 한 대위의 SNS에서 제복과 얼굴 사진을 확보한 뒤 흥신소에 미행까지 의뢰했다. 자신의 딸이 만나는 사람이라며 신분을 속였고, 흥신소는 250만원 상당의 비트코인을 받고 해당 장교의 근무부대와 관사, 거주 호실, 일정과 동향 등을 파악해 전달했다.

다른 장교에게는 텔레그램으로 접촉해 군 조직도 등의 정보를 제공하면 돈을 주겠다고 제안했지만 거절당했다.

이번 사건에서 주목할 부분은 북한 공작원이 이미 장교 7명의 기본 신원정보를 확보한 상태에서 추가적인 생활·접근 정보를 요구했다는 점이다. 해당 기본정보가 북한 측에 어떤 경로로 넘어갔는지는 현재 공개된 판결 보도만으로 확인되지 않았다.

연락처와 사진도 ‘기밀’…법원이 본 위험

재판부는 A씨의 행위를 북한의 지령에 따른 국가기밀 탐지·수집으로 판단했다.

특히 반북 활동 탈북민의 사진·연락처·활동 상황이 북한에 알려질 경우 해당 탈북민을 추적하거나 위해를 가하고 북한에 남은 가족에게 보복하는 데 이용될 수 있어 기밀로 보호할 실질적 가치가 있다고 봤다.

대법원 판례 역시 국가보안법상 기밀을 군사비밀로만 한정하지 않는다. 일반인에게 이미 널리 알려진 정보가 아니면서 누설될 경우 국가 안전에 위험을 초래할 우려가 있고 보호할 실질적 가치가 있는지를 판단하도록 하고 있다. 동시에 공지된 정보인지, 실제 위험성이 있는지는 당시 안보 상황과 정보의 성격을 구체적으로 따져야 한다는 기준도 제시한다.

재판부는 A씨가 개인적·금전적 이익을 위해 국가 안전을 위협하는 활동에 가담했고, 여러 차례 지령을 수행한 데다 범행을 부인하고 있다며 죄질이 무겁다고 판단했다.

Next Insight 분석 | 가장 위험한 기밀은 때로 ‘사람’ 그 자체

이번 사건은 현대 간첩활동의 변화된 모습을 보여준다.

과거의 간첩을 떠올리면 암호문, 무전기, 군사문서부터 생각하기 쉽다. 그러나 이 사건에서 공작수단으로 등장한 것은 텔레그램·가상자산·SNS·후원·민간 흥신소였다. 일상적인 서비스가 서로 연결되면서 정보수집망으로 바뀌었다.

표적 역시 문서에서 사람으로 확장됐다.

누가 어느 부대에서 근무하는지, 어디에 사는지, 누구와 접촉하는지, 어떤 활동을 하는지와 같은 정보는 각각 떼어놓으면 사소해 보일 수 있다. 그러나 이를 연결하면 특정인의 신원·관계망·생활패턴·접근 가능성을 재구성할 수 있다.

탈북민에게는 본인과 북한 내 가족의 안전 문제가 되고, 현역 군인에게는 추가 정보수집이나 포섭을 위한 출발점이 될 수 있다.

따라서 현대 정보보안에서 지켜야 할 대상은 비밀문서만이 아니다.

사람에 관한 작은 정보가 연결되는 순간 하나의 정밀한 지도처럼 변할 수 있다. 이번 판결이 보여준 더 큰 경고는 6억6000만원의 코인이 아니라, 우리가 평범한 개인정보라고 생각했던 것들이 누구의 손에서 어떤 목적으로 결합되는가에 있다.

취재·작성: 김귤연 기자 | Next Insight News
nextinsight.news@gmail.com

참고자료

  •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21부 판결 관련 법조계 취재 보도, 연합뉴스, 2026년 9월 5일
  • 뉴시스, 북한 공작원 지령 탈북민·현역 군인 정보수집 사건 판결 보도, 2026년 9월 5일
  • 국가법령정보센터, 대법원 국가보안법상 국가기밀 판단 기준 관련 판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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