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니어는 빨라졌는데 5년 뒤 팀장은 안 보인다…AI가 끊어놓은 ‘성장의 사다리’

생성형 AI가 초보자의 생산성을 끌어올리는 동안 사라지는 시행착오…기업이 다시 설계해야 할 ‘숙련의 과정’
생성형 AI는 주니어 직원의 생산성을 빠르게 끌어올리고 있다. 문제는 그 다음이다. 초보자가 숙련자의 결과를 곧바로 얻는 동안, 숙련자가 되기까지 반드시 거쳐야 했던 판단과 시행착오까지 함께 사라지고 있다. AI 시대 조직의 새로운 위험은 일자리 감소만이 아니라, 몇 년 뒤 조직을 이끌 사람을 키우는 과정 자체가 약해지는 데 있다.

초보자 생산성 34% 상승…가장 큰 혜택은 주니어

AI가 주니어의 성과를 끌어올린다는 연구 결과는 이미 확인되고 있다.

에릭 브린욜프슨 스탠퍼드대 교수와 연구진은 5,179명의 고객지원 직원을 대상으로 생성형 AI 도입 효과를 분석했다. AI 도구를 사용한 직원들의 생산성은 평균 14% 증가했지만, 초보자와 저숙련 직원에서는 향상 폭이 34%에 달했다. 반면 경험이 많고 성과가 높은 직원에게 미친 영향은 상대적으로 작았다.

AI가 숙련 직원의 대화 방식과 해결 경험을 압축해 초보자에게 제공했기 때문이다.

예전에는 몇 년간 고객을 상대하고 실패를 겪어야 익힐 수 있었던 노하우 일부를 AI가 업무 첫날부터 제공하기 시작한 셈이다.

조직 입장에서는 매력적이다. 교육기간은 줄고, 신입 직원의 생산성은 빨리 올라간다.

그러나 이 변화에는 역설이 숨어 있다.

배우는 속도가 빨라진 것과 스스로 판단하는 능력이 빨리 생긴 것은 같은 일이 아니다.

선배가 알고 있던 것, 이제 AI도 알고 있는 시대

전통적인 조직에서 선배의 권위는 경험과 정보에서 나왔다.

어떤 고객이 위험한지, 어떤 보고서가 통과되는지, 문제가 생기면 누구에게 먼저 연락해야 하는지. 조직도에는 적히지 않은 이런 지식이 연차를 만들었다.

생성형 AI는 이 정보 격차를 빠르게 줄이고 있다.

보고서 초안, 자료 분석, 코드 작성, 이메일, 시장조사까지 과거라면 선배의 도움을 받아야 했던 업무를 저연차 직원이 혼자 처리할 수 있다.

따라서 “내가 너보다 오래 해봤다”는 사실만으로 리더십을 확보하기는 점점 어려워진다.

대신 리더에게 필요한 능력은 달라진다.

답을 알고 있는 사람이 아니라, 나온 답 가운데 무엇이 맞는지 판단할 수 있는 사람.

AI가 지식의 진입장벽을 낮출수록 오히려 최종 판단의 무게는 더 커지는 구조다.

AI를 쓰라고 하면서, 쓰면 낮게 평가하는 조직

여기에 또 하나의 모순이 있다.

기업은 직원들에게 AI 활용을 요구하면서도, 사람들은 AI를 사용한 동료를 낮게 평가할 가능성이 있다.

2025년 미국국립과학원회보(PNAS)에 게재된 연구는 여러 실험을 통해 직장에서 AI 도움을 받은 사람이 능력과 성실성 측면에서 낮은 평가를 받을 수 있는 이른바 ‘사회적 페널티’를 확인했다.

회사는 AI를 쓰라고 하고, 직원은 AI를 쓴 사실을 숨기는 상황이 나타날 수 있다는 의미다.

이렇게 되면 조직은 AI 활용 수준을 정확하게 파악하기 어렵다.

누가 AI를 사용했는지보다 누가 결과를 제대로 검증했는지가 중요해졌지만, 평가체계는 여전히 ‘얼마나 직접 일했는가’를 보고 있을 수 있다.

생성은 빨라졌지만 검증은 더 무거워진 업무

AI가 만들어내는 속도는 이미 사람보다 빠르다.

보고서 하나를 몇 분 만에 만들고, 수십 개 아이디어를 즉시 제시하며, 코드와 문서를 동시에 생산한다.

그런데 조직 전체 생산성이 같은 속도로 올라가는 것은 아니다.

생성된 결과를 누군가는 확인해야 하기 때문이다.

숫자가 맞는지, 출처는 실제 존재하는지, 회사 정책과 맞는지, 법적 위험은 없는지 판단하는 과정이다.

과거 업무의 병목이 ‘작성’이었다면 AI 시대에는 점차 ‘검증’으로 이동하는 이유다.

AI가 한 시간 걸리던 초안을 5분 만에 만들더라도, 그 결과를 검증하는 데 숙련자가 30분을 사용한다면 절감된 시간의 일부는 다른 사람에게 이동한 것이다.

속도만 측정하는 AX 지표로는 이 비용이 잘 보이지 않는다.

AI를 쓰면 오히려 23% 나빠진 업무

AI의 성능도 업무마다 다르다.

BCG가 컨설턴트를 대상으로 실시한 실험에서는 생성형 AI가 잘하는 창의적 제품 아이디어 업무에서 AI 사용자의 성과가 크게 향상됐다.

그러나 복잡한 경영 문제를 분석하는 업무에서는 결과가 반대였다.

AI를 사용한 참가자의 성과가 AI를 사용하지 않은 집단보다 23% 낮았다. 연구진은 AI가 잘하지 못하는 영역에서도 사용자가 결과를 지나치게 신뢰하는 현상을 중요한 원인으로 지적했다.

여기서 새로운 숙련의 의미가 드러난다.

AI 시대의 전문가는 AI를 가장 많이 사용하는 사람이 아닐 수 있다.

언제 AI를 사용해야 하고, 언제 의심해야 하며, 언제 버려야 하는지를 아는 사람에 더 가깝다.

그 판단은 프롬프트 몇 개로 단기간에 만들어지기 어렵다.

빠른 주니어 뒤에서 사라지는 ‘실패의 경험’

문제는 그 판단력이 어떻게 만들어지는가다.

과거의 주니어는 자료를 직접 찾고, 잘못된 보고서를 다시 쓰고, 선배에게 지적받고, 판단이 틀렸다는 경험을 반복했다.

비효율적으로 보이지만 그 과정에서 중요한 것이 축적됐다.

무엇을 의심해야 하는지, 어떤 숫자가 이상한지, 질문을 어디서 다시 시작해야 하는지를 배우는 과정이다.

AI가 완성도 높은 초안을 먼저 제공하면 이 과정 상당 부분을 건너뛸 수 있다.

당장은 생산성이 오른다.

하지만 조직 입장에서는 몇 년 뒤 다른 문제가 생길 수 있다.

AI가 만든 답을 검증해야 할 사람이 필요한데, 정작 검증할 수 있는 숙련자를 충분히 키우지 못한 상황이다.

오늘의 효율성이 미래의 판단력을 잠식할 수 있다는 뜻이다.

Next Insight 분석 | 보호해야 할 것은 일자리가 아니라 ‘숙련이 만들어지는 과정’

AI 시대 기업들이 가장 먼저 고민한 것은 어떤 업무를 자동화할 수 있느냐였다.

이제 질문을 하나 더 추가해야 한다.

자동화할 수 있지만, 그래도 사람이 직접 해봐야 하는 업무는 무엇인가.

초안 작성이나 자료 정리처럼 AI가 빠르게 대체할 수 있는 일 중에도 사람이 직접 수행하면서 판단력을 배우는 과정이 있을 수 있다.

모든 비효율을 제거하는 것이 반드시 조직의 장기 생산성을 높이는 것은 아니다.

신입사원이 한 시간 걸려 작성하던 보고서를 AI가 5분 만에 만들 수 있다면 단기적으로는 55분을 절약한다.

그러나 그 한 시간 동안 사람이 배우던 구조화, 비교, 오류 발견, 책임 판단까지 사라진다면 그 비용은 당장 재무제표에 나타나지 않는다.

몇 년 뒤 나타난다.

주니어는 빨라졌는데 팀장이 될 사람은 보이지 않는 조직.

AI 시대의 인재 전략은 사람의 일자리를 무조건 보호하는 문제가 아니다.

사람이 미래의 판단자가 되기 위해 반드시 경험해야 할 업무를 골라 남겨두는 문제에 가깝다.

AI 시대의 가장 큰 실수는 사람이 일을 덜 하는 것이 아닐 수 있다.

사람이 나중에 판단자가 되기 위해 반드시 겪어야 했던 일을 너무 일찍 AI에게 넘기는 것이다.

참고자료

  • Erik Brynjolfsson·Danielle Li·Lindsey R. Raymond, Generative AI at Work, NBER·The Quarterly Journal of Economics
  • Boston Consulting Group, How People Can Create—and Destroy—Value with Generative AI
  • PNAS, 직장 내 생성형 AI 사용에 대한 사회적 평가 관련 실험 연구
  • 주간경향, 「“팀장님, AI는 아니라고 하는데요”…AI 시대가 원하는 리더십은 뭘까」, 2026.09.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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