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부 아들에게 맡긴 1조 달러 기업의 이사회…워런 버핏이 하워드를 선택한 이유

월가 대신 농장과 분쟁 현장을 택한 71세 하워드…33년간 이사회 참여 끝에 회장 취임, 투자·경영은 전문 CEO에게

농부, 사진가, 보안관. 세계적인 투자자 워런 버핏의 아들이 걸어온 길은 아버지와 달랐다. 대학 세 곳을 다녔지만 학위를 취득하지 못했고, 월가에서 투자 경력을 쌓는 대신 농장에서 트랙터를 몰았다. 아프리카와 우크라이나의 분쟁 지역에서는 카메라를 들고 식량난과 전쟁의 현실을 기록했다.

그런 하워드 그레이엄 버핏이 71세에 세계적인 투자회사 버크셔 해서웨이의 이사회 의장에 올랐다.

워런 버핏이 지난 18일 96세의 나이로 이사회 의장직에서 물러나면서 아들 하워드가 신임 의장으로 선출됐다. 1993년 버크셔 이사회에 합류한 지 33년 만이다.

시가총액 1조 달러가 넘는 기업의 회장직이 아들에게 넘어갔지만, 이번 승계는 일반적인 가족기업의 경영권 승계와 다른 구조를 갖고 있다. 워런 버핏은 기업의 직접 경영을 전문경영인에게 맡기고 아들에게는 이사회의 감독과 기업문화 보호라는 역할을 부여했다.

그렇다면 워런 버핏은 왜 투자 전문가가 아닌 하워드를 선택했을까.

대학 졸업장 대신 농장으로…아버지와 다른 길을 선택한 아들

하워드는 1954년 12월 워런 버핏과 첫 번째 부인 수전 톰프슨 버핏 사이에서 태어난 세 자녀 중 둘째이자 장남이다.

젊은 시절 어거스타나 칼리지와 채프먼 칼리지, 캘리포니아대학교 어바인캠퍼스 등 세 대학에 다녔지만 어느 곳에서도 학위를 받지 못했다.

학교생활에 적응하지 못하자 아버지는 그에게 버크셔 계열사인 시즈캔디에서 일해볼 것을 권했다. 이후 하워드는 굴착 사업 등을 거쳐 농업에 뛰어들었다.

1986년 워런 버핏은 미국 네브래스카주 오마하 북쪽에 있는 400에이커, 약 49만 평 규모의 농장을 28만 달러에 구입했다.

농장 구입 자금은 아버지가 부담했지만 하워드는 임대료를 내고 농장을 운영했다.

부자 사이에는 독특한 계약도 있었다. 당시 워런 버핏은 아들이 체중을 약 83kg 이하로 유지하면 농장 수익에서 지급하는 임대료 비율을 26%에서 22%로 낮춰주기로 했다.

건강관리에 경제적 보상을 연결한 계약이었다.

워런 버핏은 2013년 주주서한에서 해당 농장에 투자할 당시 자신은 농업에 대해 아는 것이 거의 없었지만, 농업을 좋아하는 아들에게 예상 생산량과 운영비용을 배웠다고 설명했다.

아버지는 투자 판단에 필요한 농업 지식을 아들에게서 얻었고, 아들은 농장 운영을 통해 자신이 선택한 분야에서 경력을 쌓았다.

농부에서 사진가·보안관까지…월가 밖에서 쌓은 경력

하워드는 농업 이외에도 여러 분야에서 활동했다.

세계적인 곡물 가공·유통기업 아처 대니얼스 미들랜드(ADM)와 농업 관련 기업 GSI그룹에서 고위 임원으로 근무했으며, 코카콜라와 콘아그라 등 여러 기업의 이사회에도 참여했다.

1999년부터는 자신의 이름을 딴 하워드 G. 버핏 재단을 이끌고 있다.

재단의 주요 사업은 국제 식량안보와 분쟁 완화, 인신매매 대응이다. 하워드는 농업 현장에서 쌓은 경험을 바탕으로 빈곤 지역의 식량 생산과 농업기반 복구를 지원해 왔다.

사진가로서도 세계 여러 국가를 방문했다. 특히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이후에는 현지의 전쟁 피해를 기록하고 농업시설 복구와 지뢰 제거, 민간인 지원 등 다양한 사업에 참여했다.

공직 경험도 있다.

2017년 9월부터 2018년 12월까지 미국 일리노이주 메이컨카운티에서 보안관으로 근무했다.

이처럼 하워드의 경력은 전통적인 금융투자 전문가와 거리가 있지만, 농업기업의 경영진과 상장기업 이사, 자선재단 운영자로서 조직을 관리하고 의사결정에 참여한 경험을 갖고 있다.

무엇보다 1993년부터 버크셔 이사회에서 활동하며 33년 동안 회사의 주요 의사결정과 경영 감독 과정에 참여해 왔다.

워런 버핏의 선택…경영권이 아니라 기업문화를 지킬 책임

워런 버핏이 하워드를 선택한 이유는 지난 18일 주주들에게 보낸 서한에 담겨 있다.

버핏은 그레그 에이블이 이미 버크셔의 최고경영자로서 주요 의사결정을 책임지고 있으며, 자신이 기대했던 수준을 넘어 역할을 수행하고 있다고 밝혔다.

이어 아들 하워드에게는 회사의 기업문화와 가치를 지키는 역할을 맡겼다고 설명했다.

이번 인사의 핵심은 최고경영자와 이사회 의장의 역할을 분리했다는 점이다.

그레그 에이블은 보험과 철도, 에너지, 제조업 등 버크셔의 다양한 사업을 운영하고 주요 투자와 자본배분을 결정한다.

반면 하워드는 비상임 이사회 의장으로서 경영진을 감독하고 기업문화와 주주 이익을 보호하는 역할을 담당한다.

워런 버핏은 2013년 주주총회에서도 하워드의 회장 승계 구상을 설명한 바 있다.

당시 그는 최고경영자 선정에 문제가 발생했을 경우, 기업문화와 주주 이익을 중시하는 비상임 의장이 있다면 이사회가 필요한 조치를 취하기가 수월해진다는 취지로 설명했다.

하워드가 직접 회사를 운영하거나 투자 결정을 내리는 것이 아니라, 이사회 차원에서 경영진을 감독하도록 한다는 구상이었다.

따라서 이번 회장 선임은 그레그 에이블의 경영에 문제가 발생했기 때문이 아니라, 오래전부터 준비해 온 승계계획에 따른 조치다.

33년의 이사회 경력…갑작스러운 부자간 승계는 아니었다

하워드의 회장 취임은 최근 갑자기 결정된 일이 아니다.

워런 버핏은 1993년부터 아들을 버크셔 이사회에 참여시켰고, 이후 장기적인 승계계획에서 하워드의 비상임 회장 역할을 공개적으로 설명해 왔다.

버크셔의 2026년 주주총회 위임장에도 버핏 일가의 구성원이 장래에 비상임 이사회 의장을 맡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워런 버핏의 판단이 기록돼 있다.

다만 최종 선임은 이사회의 책임이라는 점도 명시돼 있다.

버크셔 이사회는 지난 18일 하워드를 신임 의장으로 선출했으며, 독립이사 대표인 수전 데커는 기존 직책을 유지하게 됐다.

워런 버핏 역시 명예회장으로 물러났지만 이사회 구성원으로 남아 자신의 경험과 의견을 제공할 예정이다.

또한 하워드의 의장 취임은 아버지의 주식이나 재산을 모두 물려받았다는 뜻이 아니다.

버크셔의 경영은 전문경영인이 담당하고, 이사회는 회사의 장기적인 방향과 경영진에 대한 감독 역할을 수행하는 구조다.

Next Insight 분석 | 아들이 물려받은 것은 투자 결정권이 아니라 기업을 지킬 책임

워런 버핏은 지난 60여 년 동안 버크셔 해서웨이를 세계적인 투자·사업 지주회사로 성장시켰다.

그 과정에서 기업의 장기적인 가치와 자회사 경영진의 자율성, 주주에 대한 책임을 강조해 왔다.

이번 승계에서 워런 버핏이 해결하려 한 문제는 자신이 물러난 이후에도 이러한 경영원칙을 어떻게 유지할 것인가에 관한 것이다.

버핏은 회사를 직접 운영할 후계자로 그레그 에이블을 선택했다. 아들 하워드에게는 그 경영을 감독하고 기업문화를 보호하는 이사회 의장직을 맡겼다.

두 사람에게 서로 다른 역할을 부여한 것이다.

하워드의 농업과 자선사업, 기업 이사회 경력은 아버지와 다른 인생을 살아왔다는 점을 보여준다. 그러나 그 경력 자체가 버크셔의 미래 경영 성과를 보장하는 것은 아니다.

향후 실제로 확인해야 할 부분은 최고경영자와 이사회 의장이 각자의 역할을 어떻게 수행하는지, 그리고 기존의 기업문화와 주주 중심 경영이 새로운 체제에서도 유지되는지다.

워런 버핏이 아들에게 맡긴 것은 자신의 투자 능력을 그대로 재현하는 일이 아니라, 새로운 경영진 아래에서도 버크셔의 기업문화와 주주 이익을 보호하는 책임이다.

71세 하워드 버핏의 회장 취임은 33년에 걸친 이사회 활동의 새로운 출발점이자, 워런 버핏 이후 버크셔의 경영과 감독을 분리한 승계체제가 본격적으로 운영되는 계기가 됐다.

작성·취재 | Next Insight News 김귤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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